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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회초리!

충청 창의인성교육원 효지도사 / 시인 김 인 희

편집부 | 기사입력 2021/05/11 [08:44]

아버지의 회초리!

충청 창의인성교육원 효지도사 / 시인 김 인 희

편집부 | 입력 : 2021/05/11 [08:44]

  

 

 

 시나브로 흐르는 시간이 나뭇잎의 연두색을 날마다 짙은 녹색으로 덧칠하고 있는 푸른 5월이다. 우리는 계절의 여왕 5월을 가정의 달이라고 명명(命名)하고 있다. 어버이날에 그리움에 몸부림치면서 부모님께 달려갔다. 부모님께서 나란히 누워계신 산소에서 추억을 자맥질하면서 한나절을 앉아있었다.

 

유년 시절에 이때쯤 아버지께서는 산비탈 황토밭에서 “이랴~~ 워~워~”하고 소를 몰아 쟁기질하면서 농사를 시작하셨다. 아버지의 쩌렁쩌렁한 호령에 대지가 꿈틀 태동하고 온갖 생명을 해산(解産)했다. 논두렁에서 씀바귀는 날마다 출석하는 숫자가 늘어났고 노란 민들레는 자신의 빛깔을 가진 노란 나비를 불러들이던 행복한 봄이었다.

 

어린 필자에게 아버지는 웅장한 산이었다.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내주는 하늘이었다. 천수답(天水畓)을 농사하면서 모내기철 긴 가뭄에도 하늘을 원망하지 않았다. 아래 논에서 우리 논의 물꼬를 열었을 때 모르는 척 지나쳤다. 철없는 필자가 고사리손으로 물꼬를 막으려고 했을 때 호통을 치셨던 기억이 생생하다. 아버지께서는 자식에 대해 한없이 자애로웠고 이웃에 대한 배려하는 마음 또한 가히 따라잡을 수 없이 넓고 깊었다.

 

 그 시절 아버지께 두 번 호되게 회초리를 맞은 기억이 있다. 안방을 청소하다가 아버지 외투를 들었는데 호주머니에서 동전 두 개가 떨어졌다. 마침 일기장을 살 일이 있어서 조금도 망설임 없이 일기장을 샀다. 저녁때 아버지께서 평소와 다른 목소리로 부르셨다. 엄중한 목소리로 아버지 외투에서 돈을 꺼냈느냐고 물으셨다. 필자는 의기양양(意氣揚揚)하게 방바닥에 떨어져 있었던 150원을 가지고 일기장을 샀다고 말씀드렸다. 일기장을 펼쳐서 반듯한 글씨로 빼곡하게 쓴 일기를 보여드리면서 아버지의 칭찬을 기다렸다. 아버지께서는 주인의 허락을 받지 않고 쓴 돈은 도둑질과 다름없다고 하시면서 종아리를 치셨다. 그날 이후로 지금까지 무엇이든지 내 것이 아니면 쳐다보지 않았고 정직한 마음으로 살게 한 아픈 교육이었다.

 

또 한 번의 종아리는 언니와 동생과 셋이서 동시에 맞았다. 그 시절 시골 동네에 텔레비전이 있는 집이 몇 안 되었다. 동네 꼬마들이 텔레비전이 있는 집에 쪼르르 몰려다녔고 어른들께서는 나무라지 않으시고 텔레비전 앞에 앉히셨다. 비가 많이 내린 날이었다. 우리 셋이 킬킬대면서 텔레비전에서 본 만화영화 얘기하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아버지께서는 그런 우리를 보시고 버럭 화를 내시면서 회초리를 치셨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 천둥같이 호통을 치면서 질척질척한 날 흙탕물 묻은 발로 남의 집 안방에 앉아서 폐를 끼쳤다는 것이 회초리 친 이유였다. 한두 명도 아니고 셋씩이나 몰려가서 남을 힘들게 했다고 하면서 사정없이 종아리를 때렸다.

 

 우리는 사랑방에 들어가서 아픈 종아리를 만지면서 엉엉 울었다. 다음 날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왔을 때 마법 같은 일이 일어났다는 것을 알았다. 안방에 커다란 텔레비전이 놓여있었다. 어머니께서는 우리에게 회초리를 치고 아버지께서 잠 못 이루고 뒤척였다고 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읍내 다녀온다고 갔다가 텔레비전과 함께 귀가했다고 했다. 자녀의 종아리를 치고 부모 마음은 몇 배 더 아프다는 것을 부모가 된 후에야 알게 되었다.

 

 필자는 두 자녀를 양육하면서 거실에 ‘효자손’을 걸어 두었다. 자녀들이 잘못했을 때는 따뜻한 효자손이 매운 회초리로 둔갑했다. 위인전에서 자녀를 훌륭한 사람으로 키우기 위해 부모가 엄하게 훈육하고 매를 들었던 것을 읽은 후 자녀를 엄격하게 양육했다. 부모가 되고 보니 자녀들을 올바르게 키우는 것이 살얼음판 걷듯 매사 조심하고 살피면서 사랑의 매가 필요했다. 요즘 젊은 세대들이 이해 불가라고 강변(强辯)한다고 해도 사랑의 매에 대한 소신만큼은 굽히고 싶지 않다. 

 

성인이 된 딸과 아들이 무시로 하는 말이 있다. 필자가 자녀들 어렸을 때 엄청 무섭게 매를 들었다고 했다. 지금 그렇게 매를 들었다면 주변에서 아동학대로 신고할지도 모른다고 했다. 필자가 효자손을 회초리로 사용하면서 늘 효자손으로 맞으면 효자가 될 것이라고 했던 것이 억지논리였다고 의기투합(意氣投合)했다. 필자는 자녀들에게 다시 그때로 되돌아가도 회초리 교육은 변함없을 것이라고 일침을 놓았다. 자녀들이 발을 구르면서 웃었다. 그렇게 자란 자녀들은 자신들의 좌표를 스스로 정하고 몸도 마음도 생각도 바르게 위풍당당 전진하고 있다.

 

 필자는 아버지의 유전자를 그대로 이어받아서 타인의 가슴에 매듭을 짓지 않으려고 몸부림치고 있다. 필자의 그 DNA가 자녀들에게 대물림되기를 진정으로 바란다.

 

 사는 것이 罪의 쳇바퀴 돌리는 여정인가. 어버이날에 불현듯이 아버지의 회초리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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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동의 권리 2022/09/17 [14:04] 수정 |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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