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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탐사기획보도ⵈ 제19탄, 만주 벌판의 호랑이 김좌진 장군!

충청남도 지역언론 지원사업...내포 문화의 역사적 인물 집중 탐방

정덕진 기자 | 기사입력 2021/10/21 [00:06]

[특집]탐사기획보도ⵈ 제19탄, 만주 벌판의 호랑이 김좌진 장군!

충청남도 지역언론 지원사업...내포 문화의 역사적 인물 집중 탐방

정덕진 기자 | 입력 : 2021/10/21 [00:06]

 

최창의(충청창의인성교육원)교수

 

백야 김좌진 장군을 만주 벌판의 호랑이라고 불렀다. 고구려 시대 광개토대왕이 정복했던 우리의 역사 만주 벌판에 대해 가슴이 뛴다.

 

수년 전에 백두산 기행을 갔을 때 일행이 탄 버스가 광활한 옥수수밭을 지날 때였다. 조선족 안내원이 끝없이 펼쳐진 옥수수밭을 가리키며 그곳이 바로 만주 벌판이라고 했다. 순간 , 고구려 땅, 우리의 영토!”하고 탄성을 지른 필자를 주시하면서 그 말을 뱉으면 안 된다고 주의를 주었다.

 

 

백야 김좌진 장군 (광복 70주년 기념 메달)

백야 김좌진 장군을 집중 탐방하면서 백두산 기행에서 겪었던 아픔이 바르르 되살아났다. 때문에 열정적으로 취재할 수밖에 없었다.

 

김좌진 장군은 18891216일 충청남도 홍성군 갈산면 행산리에서 출생하였다. 흔히 청산리 대첩의 대표 장군으로 나온다. 나이 17(1906)에 장군은 집안의 가노를 해방 및 땅을 분배하였고 민족적 자립을 위한 무장 독립운동의 선봉에도 서는 동시에 국가의 미래를 위한 교육사업도 활발히 펼쳐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대한제국 교육 사회사업 르네상스 혁신 선구자 인물 중 한 명이기도 하다.

 

김좌진 장군은 1918년 무오 독립선언에 서명하였다. 1919년 북로군정서 사단장과 사관연성소 소장을 겸임했다. 19201021일 청산리 전투를 지휘하여 일본군을 대파하였다. 김좌진 장군은 1921년 대한독립군단을 결성했다. 1921년 우수리강을 넘어 이만까지 갔다가, 다시 만주로 돌아왔기 때문에 자유시 참변은 겪지 않았다.

 

 

백야 김좌진 장군 (청산리대첩 100주년 기념)

 

김좌진 장군은 1925년 군사위원장 겸 사령관직 겸임한 신민부를 창건하였다. 또한 성동 사관학교를 세워 부교장으로서 정예사관 양성에 심혈을 기울였다. 이때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국무위원으로 임명했으나, 취임하지 않고 독립군 양성에만 전념하였다.

 

청산리 전투는 독립전쟁에서 가장 큰 전과를 올린 전투로 기록되었다. 김좌진 장군의 북로군정서는 192010월에 홍범도의 대한독립군, 안무의 국민회군 등 독립군 연합에 합류했다. 김좌진 장군은 북로군정서의 사관연성소 소장을 겸하고 있었는데, 19209월에 300명의 첫 졸업생을 배출했다.

 

김좌진 장군은 이들을 핵심 전력으로 삼았다. 그리고 이들과 훈련병까지 포함해 총 1,100여 명에 이르는 부대를 이끌고 청산리로 향했다. 청산리는 화룡현 삼도구(三道溝) 지역을 우리 식으로 일컫는 말로, 북로군정서를 비롯한 독립군 연합이 새로운 군사 기지로 삼기 위해 그곳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백야기념관 (충청남도 홍성군 갈산면 소재 )

한편 우리말로 어랑촌이라고 부르는 인근의 이도구(二道溝)에는 홍범도와 안무의 부대가 주둔 중이었다.

 

청산리 전투(靑山里 戰鬪) 또는 청산리 대첩(靑山里 大捷)192010월 김좌진, 나중소(羅仲昭), 서일, 이범석 등이 지휘하는 북로군정서군(北路軍政署軍), 홍범도가 지휘하는 대한독립군, 대한신민단 예하 신민단 독립군 등 주축으로 활약한 만주 독립군 연합 부대가 중화민국 길림성 화룡현 청산리 백운평(白雲坪), 천수평(泉水坪완루구(完樓溝) 등지의 10여 차례에 간도에 출병한 일본 제국 육군과 전투를 벌인 총칭이다.

 

중국 마적이 일으킨 훈춘 사건을 계기로 만주에 대규모 부대를 투입하게 된다. 19201021일부터 1026일까지 길림성 화룡현 내의 여러 지역에서 교전하여 청산리 골짜기에서 독립군은 일본군과 교전했다. 청산리 전투의 결과는 한국 독립군의 대승이다.

 

적막한 달밤에 칼머리의 바람은 세찬데 칼끝에 찬서리가 고국 생각을 돋구누나 삼천리 금수강산에 왜놈이 웬 말인가 단장의 아픈 마음 쓰러 버릴 길 없구나!

 

칼 머리 바람에 센데 관산 달은 밝구나 칼끝에 서릿발 차가워 고국이 그립도다 삼천리 무궁화동산에 왜적이 웬 말이냐 진정 내가 님의 조국을 찾고야 말 것이다.

 

할 일이 할 일이 너무도 많은 이때에 내가 죽어야 하다니 그게 한스러워서

조국의 독립을 위하여 청춘을 바치고 목숨을 바친 백야 김좌진 장군.

동포의 손에 최후를 맞이하면서 남긴 마지막 유언이 주변을 휩싸고 돈다.

, 장군이여, 조국이여, 대한민국이여!

 

[본 기획 기사는 충청남도 지역언론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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