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노쇠하신 몸과 골다공증 가득한 뼈가 세월을 견디지 못하고 무너져내렸다. 어머니께서 집안에서 그만 낙상으로 대퇴부 골절을 당하셔서 천안의 한 종합병원에서 접합수술을 하셨다. 시간이 지나니 종합병원 병실을 더 이상 차지하고 있을 수 없어서 재활병원으로 옮겨야 했다.
병실에서 필요한 것이 있어 밤 시간에 당진집으로 차를 몰아 달려갔다. 혼자 계시던 아버지께서 반갑게 맞아주신다. 몇 마디 대화 끝에 아버지께서는 믹스커피를 권하셨다. “밤에 운전하려면 졸리다. 졸리지 않게 커피 한잔 마시고 가라. 컵에 부어놓았으니 뜨거운 물 부어 저어서 마셔라.” 무심한 듯 건네주시는 믹스커피 한잔을 받아 마시는데 왜 이렇게 눈물이 쏟아지던지. 믹스커피 한잔은 늘 자식들 챙겨주시던 어머니가 안 계신 집에 혼자 지내시면서도 자식이 다녀간다니까 뭔가 주고 싶으신 아흔 되신 아버지의 사랑 표현이신 거다.
필요한 물건을 챙겨 들고 어머니가 계신 병원으로 갔다. 코로나로 비대면 면회밖에 안 되는 안타까운 상황이라 걱정을 하며 문 앞에서 기다리는데, 간병인께서 어머니를 휠체어에 태우고 나왔다. 마스크를 쓴 채 먼 발치에서 인사를 드리고 준비해간 물건과 함께 평소 어머니께서 좋아하시던 인절미를 한 봉지 건넸다. 감염을 걱정하는 간호사들의 눈총에 “인제 그만 들어가세요” 하고 돌아서려는데, “애야, 이거 하나는 네가 가져가서 먹어라” 사가지고 간 인절미 한 팩을 도로 주면서 먹기를 권하셨다. 몇 번을 사양하다가 어머니가 서운하실까 봐 받아들고 돌어서는데 역시 눈물이 앞을 가렸다.
문득, 장 리슈펭(Jean Richepin)이라는 프랑스 시인의 글 <당신 어머니의 심장을>의 내용이 생각났다. 한 소녀를 사랑하는 젊은이가 있었다/ 누가 그를 비웃었다/ “당신은 두려워하는가?”/ 소녀가 요구했다/ “오늘 당신 어머니의 심장을 쟁반에 담아 가져와 줄 수 있나요?”/ 그 젊은이는 자신의 어머니를 죽였다/ 어머니의 가슴을 찢어 피로 물든 심장을 꺼내고/ 그리고는 사랑하는 연인을 향해 달렸다/ 하지만 성급했던 젊은이는 비틀거리며 넘어졌다/ 심장은 땅바닥에 구르면서 애처로운 소리를 냈다/ 그리고 심장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사랑하는 아들아, 다치지 않았느냐?”
이것이 모성이요 부모님의 사랑인 것이다. 죽어서까지 자식을 걱정하는 부모님의 사랑을 잘 묘사한 글이다. 자식에게 필요한 것이라면 그 무엇인들 못내어 놓으시겠는가? 주고 또 주시고도 더 주지 못해 애달파 하는 부모님의 사랑인 것이다. 애인에게 어머니의 심장을 요구하는 소녀와 그 요구에 따라 어머니를 죽이는 비정한 아들이 섬뜩하기는 하지만 같은 일은 아니어도 부모님께 함부로 하는 비정한 사연들이 없지 않은 세상이다 보니 이 글이 주는 감동은 크다
"나는 지금까지 한 번이라도 어머니의 심장을 도려낸 행동을 하지 않았는가?" 다시 되새겨 반성해보게 된다. 연세 드신 부모님의 고독과 질병 앞에 우리는 너무 무관심했던 건 아니었는지? 그분들의 크신 사랑을 우리는 너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기만 했던 건 아닌지? 이 연말연시 추워진 날씨에 부모님들과 이웃 어르신들의 안부를 다시한번 살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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