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어른들께 자주 들었던 “공부도 다 때가 있다”라는 말씀이 생각난다. 그때 생각했었다. 공부는 하고 싶을 때 하면 될 텐데 왜 하기 싫은 지금 이때 하라고 하는 걸까? 지금은 친구들과 밖에 나가 뛰어놀고 싶은데 말이다. 그런 생각을 했던 사람이 비단 본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나이가 들면서 그 의미를 알게 되었다. 어릴 때라고 표현할 수 있는 젊었을 때는 무슨 일이든지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다만 지금은 내가 그 일을 하고 싶지 않아서 마음을 먹지 않았을 뿐이라고 말하곤 했다. 그런데 막상 마음을 먹고 그 일, 공부라는 것을 해보려고 하니 눈도 침침하고 집중력도 떨어지고 여기저기 몸도 불편해서 오래 앉아 있을 수 조차 없다.
오늘날 청소년들에게 “공부도 다 때가 있다” 라고 예전에 어른들에게서 들었던 이야기를 하는 자신을 발견하곤 한다. 그럴 때마다 청소년들의 반응도 어쩌면 예전 그때 그 모습과 다르지 않은 것에 놀란다.
행복을 중요시하는 시대이다. 그러다 보니 행복한 가정, 행복한 사회, 행복한 학교, 행복한 나라 등 행복한 생활을 강조한 구호들이 많이 눈에 띈다.
‘행복한 학교’라니 얼마나 좋은가. 세계 어느 곳에 가도 아침에 학생들은 걸어서 학교에 가지만, 오후에 집에 올 때는 뛰어서 온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학교는 학생들에게 자기 집만큼 행복한 곳은 아닌 모양이다. 그런 학교를 행복하게 만들어 준다니 얼마나 고마운 일이고 좋은 일이겠는가?
그렇다면 행복한 학교의 조건은 무엇이 있을까? 좋은 친구, 친절한 선생님, 편리한 편의시설, 쾌적한 환경, 맛있는 식사, 안전한 환경 등 많은 요소가 있을 수 있겠다. 그중에 학생과 학부모들은 안전함과 맛있는 식사를 들지 않을까 싶다. 거기에 더하여 학교의 중요한 목적 중 하나가 학업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재미있는 수업시간이 보태지면 금상첨화 아니겠는가. 그야말로 “안전하게 잘 먹이고 잘 가르치는 학교” 면 좋겠다.
그런데 오늘날 행복한 학교의 방향이 그저 학생들의 자유와 인권이 보장되는 공간으로만 인식되고 있어 걱정이 앞선다. 학생인권조례의 등장으로 교사들은 마치 학생 인권을 탄압하는 존재로 치부되고 있고, 교육애를 발휘해 학생을 지도해 보겠다는 교사의 열정은 아동학대에 몰릴까 두려워진다. 그러다 보니 “하지 말라는데 뭘 그리 열심히 할 필요가 있나?”라는 자조 섞인 반성들이 일어나고 있다.
지금은 대부분의 학생들이 학년말 휴가이거나 새로운 상급학교를 준비하는 시기다. “한가로울 때 분주함을 대비하지 않으면 분주할 때 한가로움을 누릴 수 없다” 는 옛 성현의 말처럼 조금은 여유가 있을 때 우리는 준비해야 한다. 분명히 공부도 때가 있고, 인성교육도 때가 있다고 한다면 학창시절은 질서와 절제 속에 타인에 대한 배려를 배우면서 독서와 학습을 통해 자신의 미래역량을 준비해야 할 때다. 그저 행복한 학교생활이라는 미명으로 하루하루를 허송세월한다면 그 청소년에게 아름다운 미래의 시간을 줄어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청소년 여러분, 늦기 전에 더 큰 꿈으로 미래의 아름다운 자신의 모습을 그려보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한 노력을 여기서 지금 해보길 권한다!
<저작권자 ⓒ 충남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
|
칼럼·오피니언 많이 본 기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