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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의 죄업을 후손이 씻을 수 있는가

충남신문 칼럼니스트/ 정치학 박사 조상진

편집부 | 기사입력 2023/04/11 [10:12]

조상의 죄업을 후손이 씻을 수 있는가

충남신문 칼럼니스트/ 정치학 박사 조상진

편집부 | 입력 : 2023/04/11 [10:12]

 

 

전통적 유교사회는 가족주의를 중시한다. 그 기반은 충효사상이고 조선조 500년간 통치 이데올로기로 작동하기도 하였다. 춘추시대 주나라는 동양 최초이자 끝으로 봉건제를 시행하였는데 천자국으로서 왕(王)의 칭호를 갖고 지방에 제후국으로 공(公)을 배치하여 대륙을 다스렸다. 공들은 왕이 분봉한 자식, 친족들로 구성되었기 때문에 혈연중심의 큰 가족단위가 되었다.

 

공은 왕에 대하여 효도를 통한 충성으로 연결된다. 제후국 백성들도 공을 부모로 인식하는 충효의 의무를 갖고, 자식에게는 각자 부모에 대한 효행을 가르친 것이다. 유교(유학)교육을 담당한 학자들 역시 부모처럼 섬기게 함으로서 임금과 스승, 부모는 한 몸이라는 군사부일체 사상이 뿌리내리게 된 것이다. 그것은 천자가 나라 전체를 안정적으로 다스리는데 큰 기반이 되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제후들의 혈연이 무질서하게 뒤섞이면서 봉건 질서는 깨지고 제후들이 왕을 자처하면서 전국(戰國)시대로 접어들었는데 진나라가 천하를 통일하고 최초 황제가 된 것이다. 또 세월이 흘러 대륙은 요동치면서 북방민족이 원나라로 본토 대륙을 차지하게 되었는데 원이 붕괴하자 한족인 명나라가 본토를 되찾으면서 우리 한반도의 역사도 또다시 새로운 변화를 맞이하였다.

 

1392년 건국된 조선은 명에 사대주의 방침을 세웠고 명은 유교를 중시하였다. 조선은 제후국처럼 몸을 낮추고 군사부일체를 내세워 봉건제 통치법을 차용한 것이다. 그리고 왕족들의 무덤은 좋은 땅을 배경으로 호화롭게 만들어 죽은 후에도 권위를 세우게 하였고, 왕권 주변에서 권력을 향유하던 사대부 양반들도 자신들의 권위를 과시하기 위하여 왕족들의 무덤을 흉내 내어 명당을 찾고 묘역을 가꾼 것이다.

 

지금도 전국 유명산에 산줄기 명당터를 잡고 특정 씨족 묘지들이 석물로 치장되어 있어서 오가는 사람들의 눈길을 끌고 있다. 풍수지리 핵심은 가족으로서 기가 같으면 죽어서도 반응이 일어나기 때문에 명산의 기운이 기가 같은 후손에게로 이어져 발복(發福) 된다는 동기감응(同氣感應)설에서 비롯한다.

 

21세기 문명사회에서도 전근대적 유산인 풍수지리를 믿는 사람들은 적지 않다. 유명 씨족들은 아직도 집단으로 묘역을 만들어 수백년 전의 벼슬을 자랑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들의 조상들이 모두 훌륭한 면모만 남겨주었는가 하는 문제는 의문으로 남기도 한다. 현대의 다원주의 문화, 타인에 대한 배려 등이 강조되는 사회에서는 전통적 가족 이기주의에 대한 반성도 필요하다.

 

방랑객 김삿갓은 청년시절에 과거시험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올랐지만 시험 답안지에서, 홍경래의 난에 투항한 지방관리를 비판한 글이 있었고 나중에 그 관리가 자신의 할아버지이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 직후 조상을 욕보인 죄를 씻고자 벼슬을 버리고 하늘이 보이지 않도록 삿갓을 깊게 눌러쓰고 전국을 방랑하였다고 한다.

 

명이 망하고 1636년 북방출신 청나라가 건국되자 서양의 나라들이 들락거렸고 그 사이에 천주교 신부들도 청을 통하여 조선에 복음을 전파하였다. 1754년에 태어난 이 벽은 청년 유학자로서 천주교 서학에 심취하여 천주(하나님)에 대한 큰 관심을 갖고 기독교신앙을 배우려 했다.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된 부모는 집안 문중에 큰 환란을 부르기 전에 포기하든지, 부모가 대신 목숨을 버리는 모습을 보든지 선택을 강요하였다. 이 벽은 포기하지 않았고 부모는 자식을 창고에 가두었다. 결국 자식은 음식을 외면하고 생을 마감함으로서 문중의 파멸을 모면케 하였다.

 

1980년 5월 광주항쟁의 시민학살 명령을 내렸다고 주장되는 사건에서, 당사자 전두환은 끝까지 부인하였고 이제는 고인이 되었다. 그런데 최근에 손자가 광주 현지 고인들의 유족을 찾아가서 대신 사죄한 일이 발생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 국민들은 어떠한 평가를 내려야 할까. 손자는 1980년에 태어나지도 않았고 아직은 사회적 경험이 부족한 연령이며 마약 복용의 모습도 보였다. 또한 당시 반공체제의 시대상황도 무시할 수만 없는 일이 아닌가.

 

김삿갓은 벼슬을 버리고 조상에 대한 죄를 씻었고 이 벽은 갇힌 창고에서 반항하지 않고 생을 마감하면서 문중을 지켰다. 그런데 이번 전두환 손자의 경우에는 성격이 조금 다르다고 보이는 것이다.

 

현재 세계8대 경제대국의 국격과 개인의 존엄성이 보장된 현대적 시점에서 전근대적 씨족 우월주의 역시 무의미하다. 이제는 실사구시 차원에서 국익 우선이 필요하며 광주라는 특정 지역의 성역화를 탈피하고 좀 더 어른스럽고 성숙한 시민의식과 대승적 지성이 더 절실하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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