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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조선이 일으킨 6.25전란을 이겨낸 놀라운 역사 (Ⅱ)

천안역사문화연구소장, 충남신문 칼럼니스트/ 김성열

편집부 | 기사입력 2023/08/08 [10:26]

북조선이 일으킨 6.25전란을 이겨낸 놀라운 역사 (Ⅱ)

천안역사문화연구소장, 충남신문 칼럼니스트/ 김성열

편집부 | 입력 : 2023/08/08 [10:26]

 

 

1948.5.10. 유엔 감시 남북 동시 총선거를 결정한다.

 

북쪽 김일성 일당은 유엔 감시단 입국을 거절하고 선거를 거부한다.

 

그리고 남쪽 총선거를 반대 테러하면서 공산당은 출마를 하지 않고 총선거를 보이콧한다.

 

남조선공산당은 자체 분열에 이르게 된다.

 

총선거를 거부하는 공산당원들의 테러가 제주에서 1948.4.3. 폭동이 주동자 김달성이 감행되었다.

 

끝내 제주도는 총선거를 치르지 못하고 제주도 2명이 없는 198명 제헌의원이 선출되었다.

 

제헌의원들은 의장에 이승만 박사 그리고 이승만 대통령을 선출하게 된다.

 

제주의 공산당 테러를 진압하기 위해 여수에 있는 육군14연대 1대대를 지원하는 명령이 떨어졌다.

 

여수에 있는 육군 제14연대 1대대는 김지회가 주동이 되어 반란을 일으켜 장교, 장병들이 사살되었다.

 

드디어 미군정경찰청은 군경 공무원들 속에 숨어 지내는 적색 공산당원 분자들을 수색 검거하는 작업 감행되었다.

 

1948.12.1.대한민국 정부는 국가보안법, 반공법을 제정한다.

 

남로당 적색분자 공산당원 군경 공무원들을 색출 검거 5,000명 처형한다.

 

남로당 적색분자 군부대 공산당원 조직책 박정희 소령이 체포되어 사형선고를 받는다.

 

박정희 소령은 공산당원 중책을 맡고 있는 숙부에 의해 포섭된 것이었다.

 

송요찬 장군은 박정희 소령에게 전향 제안을 하고 박 소령은 조직군내 남조선 남노당원 200명 명단을 제출하고 전향 구제를 받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은 6.25남침을 비밀리에 착착 준비해 갔다.

 

남한정부에서는 전혀 정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박헌영 공산당 남로당 당수는 6만 명 당원들을 봉기시켜 인민군이 서울을 함락하면 전국 봉기를 자신했다.

 

6,000개 수류탄을 준비하여 봉기를 일으키려는 작전이 진행되었다.

 

남로당 봉기 책임자 서울시당위원장 홍민표는 상관 김삼룡과 상의하고 봉기 불가를 해주에 있는 박헌영에게 보고했다.

 

1948.5.10. 총선거에 남로당도 참여하여 200명 제헌의원 중에 100명당선 가능성을 제안했으나 총선거 참여도 불가하고 오히려 총선거 방해 폭동을 일으키라는 명령이었다.

 

수류탄 봉기 테러작전이 불가하다는 결단을 내린 홍민표는 북한으로 보내라는 명령을 받고 북한으로 가면 총살될 것을 예측하고 있었다.

 

홍민표는 공산노동당원 체포조직책 오제도 검사에게 자수 전향하고 핵심 당원 16명도 같이 전향 자수하게 되었다. 그리고 전국 조직원 34만 명이 전향하게 된다.

 

총선거에 참여하지 않고 총선거 방해 폭동을 일으키라는 명령을 반대하는 것이다.

 

1950.4.20.이승만 대통령은 전국에 농지개혁을 단행한다.

 

전 국민의 80% 소작인들은 공산당 세상이 되면 소작인들에게 토지를 분배해준다는 소식은 소작인들에게 평등세상이 온다는 기쁜 소식이었다.

 

이승만 대통령은 조봉암 농림부장관 주관으로 전 국민 80% 소작인들에 무상으로 토지를 나누어 주는 정책을 단행한다.

 

한국의 농지개혁은 세계적인 성공사례가 되었다. 베트남은 농지개혁을 하지 않아 공산화가 되었다. 토지개혁 경제 전쟁을 남한이 이겨냈다.

 

북조선은 끝내 6.25일 새벽 4시 남침을 감행했다.

 

유엔은 불법 남침을 감행한 북조선 정권의 침략을 규탄하고 대한민국에 유엔군을 파병하고 원조물자 지원을 결의한다.

 

전쟁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은 남한국은 서부, 중부, 동부전선 전역에서 밀려나게 된다.

 

6.25전란 때 국군은 군함 전투기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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