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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 시와 어록으로 만나는 광복 80년 기획 2

(2) 안중근 의사 공판 속기록에 담겨진 어록
충남신문 칼럼니스트, 해솔문화다큐재단 이사장/안창옥

편집부 | 기사입력 2025/06/17 [16:33]

애국 시와 어록으로 만나는 광복 80년 기획 2

(2) 안중근 의사 공판 속기록에 담겨진 어록
충남신문 칼럼니스트, 해솔문화다큐재단 이사장/안창옥

편집부 | 입력 : 2025/06/17 [16:33]

 

광복 80년 기획 두번째로 안중근 의사의 어록을 살펴보고자 한다. 안중근 의사는 1910년 경술 정월 초3(음력) 여순 감옥에서 사형판결을 받고 감옥에 들어와 기록한 글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내가 생각했던 것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예부터 허다한 충의로운 지사들이 죽음으로서 한하고 층간하고 정략을 세운 것이 뒷날의 역사에 맞지 않은 것이 없다. 이제 내가 동양의 대세를 걱정하여 정성을 다하고 몸을 바쳐 방책을 세우다가 끝내 허사로 돌아가니 통탄한들 어찌하랴

 

그러나 일본국 4천만 민족이 안중근의 날을 크게 외칠 날이 멀지 않을 것이다. 동양의 평화가 이렇게 깨어지니 백 년 풍운이 어느 때에 그치리오. 지금 일본 당국자가 조금이라도 지식이 있다면 반드시 이 같은 정책은 쓰지 않을 것이다. 더구나 만일 염치와 공정한 마음이 있었던들 어찌 능히 이 같은 행동을 할 수 있을 것인가?

 

1895년 을미년에 한국에 와 있던 일본 공사 삼포(三浦)가 병정을 몰아 대궐을 침범하고 우리의 명성황후를 시해했으되 일본 정부는 삼포를 아무런 처형도 하지 않고 석방했는데, 그 내용인즉 반드시 명령하는 자가 있어서 그렇게 한 것이 분명하다 했다.

 

그런데 오늘 이르러 나의 일로 말하면 비록 개인간의 살인죄라고 할지라도 삼포의 죄와 나의 죄가 어느 누가 중하며 어느 누가 경한가? 그야말로 머리가 깨어지고 쓸개가 찢어질 일이 아니냐? 내가 무슨 죄가 있느냐? 내가 무슨 죄를 범했느냐? 하고 천번 만번 생각하다가 문득 크게 깨달은 뒤에 손뼉을 치며 크게 웃고 말하되,

 

나는 큰 죄인이다. 다른 죄가 아니라 내가 어질고 약한 한국 인민 된 죄로다생각하자 마침내 의심이 풀려 안심이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나라가 없는 사람의 억울함을 절절하게 말하고 있다.

 

일본 공사가 병정을 동원해 나라의 국모를 무참하게 살해했음에도 아무런 죄를 묻지 않았던 엄연한 현실을 안중근은 한탄하고 있다. 안중근의 한탄과 같이 외국 공사가 한 나라의 군대를 동원하여 왕비를 살해하여 불에 태워죽일 수 있었던 엄연한 현실은 팩트이다. 왕비를 경호하지 못한 취약한 경호 능력도 또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안중근의 수기는 계속된다. ”전옥 율원((栗原)씨의 특별소개로 고등법원장 평석(平石)씨와 만나 담화했는데, 나는 사형판결에 대하여 불복하는 이유를 대강 설명한 뒤에 동양대세의 관계와 평화정략의 의견을 말했더니, 고등법원장이 다 듣고 난 뒤에 감개하여 말하되 내가 그대에 대하여 비록 두터이 동정하지마는 정부주권의 기관을 고칠 수 없는 것을 어찌하겠는가? 다만 그대가 직술하는 의견을 정부에 품달하겠다.’고 말했다고 전한다.

 

이에 안중근은 고등법원장에게 동양평화론을 집필하기 위하여 사형집행 날짜를 연기하여 줄 것을 요청하였다. 이 요청에 고등법원장이 어찌 한달 뿐이겠는가, 설사 몇 달이 걸리더라도 특별히 허가 하겠으니 걱정하지 말라는 답변을 듣고 공소권을 포기하기로 하고, 동양평화론을 저술하기 시작한다.

 

결과적으로 안중근은 저술을 마치기 전에 사형이 집행되는데 안타까운 일이다. 완성되지 못한 그의 동양평화론은 오늘의 한..일 정세를 생각해 보면서안 의사의 미래를 내다보는 혜안에 경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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