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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충남지역미디어지원사업 2차 강의 석오 이동녕 선생 아카데미 현장 탐방

석오 이동녕 선생 발자취를 따라…(6/14 녹화)

김용부 기자 | 기사입력 2025/06/22 [20:00]

2025 충남지역미디어지원사업 2차 강의 석오 이동녕 선생 아카데미 현장 탐방

석오 이동녕 선생 발자취를 따라…(6/14 녹화)

김용부 기자 | 입력 : 2025/06/22 [20:00]

 

천안 출신 독립운동가 석오 이동녕 선생에 대해 알아보고 발자취를 따라가 보면 그 정신과 사상을 이어받고자 충남지역 각계 지도자들을 대상으로 충청남도 지역미디어 지원사업으로 마련된 석오 이동녕 선생 아카데미 (최고지도자과정 1기) 2회 차 현장 탐방 프로그램이 충남신문 (대표 윤광희)이 주최하고, 석오 이동녕 선생 선양회 (상임대표 서문동, 이하 선양회)가 주관한 가운데 지난 14일(토) 진행됐다.

 

 

오전 8시, 아침 일찍부터 비가 오는 가운데 전부 다 버스에 오르자 주최 측에서 준비한 꼬마김밥, 과일, 음료 등 간식이 제공됐다.

 

이어 선양회 염남훈, 신성철 공동대표의 진행으로 수강생 한 명 한 명 각자 자기소개를

하는 동안 버스는 어느덧 1차 종착점인 서울 용산구에 있는 효창공원에 도착했다.

 

 

이곳에서부터 이날 하루 선양회 공동대표 겸 연수원장인 김중영 강사의 깊이 있는 해설로

애국선열들의 나라사랑 정신과 순국선열의 희생의 의미를 되새기는 뜻깊은 시간을 가졌다.

 

수강생들은 먼저 임정 요인 묘역으로 향했다.

 

이곳은 1940년 3월 13일 중국 기강에서 순국한 이동녕 선생과 함께 차리석 선생의 유해를

1948년 김구 선생의 주선으로 봉환하여 사회장으로 안장하였고, 같은 해 10월 환국 후

서거한 조성환 선생을 사회장으로 안장한 곳이다.

 

 

이어 삼의사 묘역으로 자리를 이동했다.

이곳은 1945년 11월에 귀국한 김구 선생이 다음 해인 6월 윤봉길 이봉창 백정기 등

삼의사의 유해를 모시고 와 이곳에 안장했고, 나중에 안중근 의사의 유해를 모실 가묘까지

준비해 둔 상태다.

 

 

이어 백범 김구 선생 묘역으로 향했다.

백범 김구 선생은 1949년 6월 26일 경고장에서 안두희의 흉탄에 맞아 서거했다.

7월 5일 국민장으로 장례를 치르고 이곳 효창공원에 안장됐다.

이를 계기로 이 일대가 독립운동에 앞장선 선열들의 묘역으로 자리하게 되었다.

이날 조용한 가운데 진지한 태도로 대한독립을 위해 순국한 분들의 영령들이 편히 잠드시길 바라면서 3곳에서 묵념을 올렸다.

 

 

이어 백범 김구 기념관으로 자리를 이동했다.

본관 1층에서 단체 기념 촬영 후, 해설사의 안내에 따라 1층과 2층 전시관을 자세하게 견학했다. 전시관에는 한국 근 현대사(동학, 의병, 애국계몽운동, 대한민국 임시정부 의열투쟁, 한국광복군, 통일운동 등)와 함께 한 김구 선생의 일대기와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관련된 사진, 문서, 영상물 등 500여 점이 전시되어 있었다.

 

 

김구의 삶과 사상을 통해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역사와 격동의 한국 근 현대사를 이해하고, 더 나아가 우리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학습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이어 효창운동장에 있는 음식점에서 김중영 강사의 협찬으로 제공된 한우우거지 해장국으로 맛있게 점심식사를 마친 수강생들은 다시 관광버스에 올랐다.

 

버스는 두 시간여를 달려 도착한 곳은 천안 목천 동리에 위치한 석오 이동녕 선생 기념관과 바로 옆에 자리한 이동녕 선생의 생가다.

 

 

독립기념관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이동녕 기념관 입구에 들어가면 태극기와 함께 이동녕 선생의 흉상이 전시되어 있고, 이어 선생의 초상화가 걸려있다.

 

 

전시관 안에는 선생이 쓴 산류천석과 광명, 대의가 액자에 담겨 있다.

산에서 흐르는 물이 바위를 뚫는다는 산류천석, 광복을 의미하는 광명, 독립운동을 의미하는 대의, 모두 1930년대에 중국 기강에서 쓴 것이다.

 

 

옆에는 임시정부 시절 썼던 편지와 당시 사용했던 태극기가 전시되어 있다.

또한 전시실에는 1919년 4월 10일 대한민국 임시의정원 초대 의장으로 회의를 진행하는

모습의 그림이 걸려있고, 그 앞에는 이동녕 선생을 가운데로 좌우에 이봉창, 윤봉길 의사가 좌석하고 있다.

 

 

기념관 옆 이동녕 선생 생가지는 이동녕 선생이 1869년 이곳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낸 집터다. 집의 구조를 보면 ㄷ자 모형 안채는 3칸 대청마루를 중심으로 양쪽에 한 칸씩 방이 있고, 전면에 대문이 딸린 대문간채가 배치되어 있는 형태다. 내부로 올라가거나 입장할 수 없도록 되어 있었지만, 한쪽에 마련되어 있는 광명책방에 앉아서 가옥의 내부와 경치를 여유롭게 바라볼 수 있었다.

 

 

집 주변에는 왜가리 등이 서식하고 있다. 또 외부에는 이동녕 선생의 동상이 설치되어 있어서 함께 기념사진을 촬영하며 좋은 추억을 남기기도 좋은 장소였다.

 

 

또한 집 밖에 우물이 있고 보호수로 지정된 은행나무가 자라고 있다. 이동녕 선생에 대한 특별한 기록을 가진 석오이동녕기념관은 초상화와 밀랍 모형, 관련 영상, 체험 공간으로 이루어져 작은 공간임에도 알차고 가치 있는 내용들로 잘 꾸며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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