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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도 삶의 한 부분이다.

편집부 | 기사입력 2009/07/24 [15:18]

죽음도 삶의 한 부분이다.

편집부 | 입력 : 2009/07/24 [15:18]
▲ 이성수 목사하늘샘 교회    

금년 들어 한국사회를 강타한 이슈중의 하나는 죽음에 대한 의미를 둘러싼 논란이었다. 존엄-사(尊嚴-死) 재판으로 불거진 죽음의 의미에 대한 논란은 재판이 끝난 이후에도 계속될 수밖에 없는 문제이다. 중요한 것은 사람이 죽음을 결정할 수 없다는 문제가 종교적 신념의 차원을 넘어가야한다는 점이다.
 
인간은 누구나 생명에의 애착을 본능적으로 갖고 있다. 왜냐하면 생명은 하나뿐이고 한번 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생은 일생(一生)이라고 부르지 않는가? 존엄사보다 더 심각한 문제로 등장하는 것이 자살문제이다.
 
이미 우리나라도 자살문제에 관한한 안전지대가 아니다. 자살발생 빈도가 OECD국가 중에서 가장 높고, 전 세계적으로도 8위에 해당한다. 하루 평균 36명이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시간당 1.5명에 해당하는 숫자이다. 2004년에 11,994명, 2005년에 12,268명, 2006년에 12,736명, 2007년에 13,036명, 2008년에도 13000이 넘는 사람이 자살했다. 왜 우리나라가 자살제국이 되었는가?
 
 
자살하는 사람들의 특징은 심리적 고통을 감당하지 못하는 정신적 의지적 취약점, 협소한 사고, 경직된 사고, 이중적이고 어정쩡한 태도, 정신적 신체적 질환으로 인한 비관, 원만하지 못한 대인관계, 상실감과 피해의식을 갖고 있다. 이런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심각한 문제를 만나게 되면 의욕상실, 절망, 낙심, 비관을 하게 되고 결국 자살을 하게 되는 것이다.
 
 
자살이란 영어로 슈사이드(suicide)라고 한다. 라틴어 슈(sui)와 사이드(cide)의 합성어로 자기 자신을 살인하는 것이다. 자기가 자신에 대해 살인범이 되는 것이다. 남을 해치지 않았다는 것으로 동정을 받기도 하지만 그러나 생명의 존엄성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용납될 수 없는 범죄행위인 것이다.
 
 
그러므로 자살은 그 형태나 동기나 상황이나 결과를 막론하고 범죄이다. 종교적으로 본다면 구원의 가능성이 사라지는 것이고 사회적으로도 가족들과 주변사람들에게 심각한 충격과 상처를 안겨주는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에 결코 합리화 되거나 미화될 수 없는 행위인 것이다.
 
 
특히 사회 환경과 민족적 특성을 고려할 때 우리나라의 자살문제는 더 이상 강 건너 불구경하듯이 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다고 봐야한다. 국가적으로, 또 사회제도적으로 강력하고도 분명한 자살방지 대책이 마련되고 시행되어야할 시점에 이르렀다. 특히 충남지역은 우울증환자 발생 율이 전국 2위로 조사되었다.
 
충청도사람들의 참고 견디고 속으로 삭히는 심리가 우울증으로 발전하는 것이다. 우울증이 무서운 것은 우울증환자의 60%가 자살을 생각하고 그 중에서 절반정도는 자살을 기도한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지역사회를 위한 교회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먼저 성도들이 생명의 존엄성과 가치를 깨닫고 실천해야한다. 자살과 타살로부터 안전하지 못한 사회상황을 극복하는 첫걸음은 생명의 존엄성을 강조하는 것이다. 내재된 과거의 상처들을 치유하고 현실의 고난을 극복할 수 있는 강인한 정신력으로 무장해야 한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연한과 생명을 온전히 누리기를 기도해야한다. 죽음도 영원이라는 삶의 한 부분임을 깨달으라. 그리고 자살을 논하기보다 생명과 소망과 승리를 논하라. 넘지 못할 산이 없고 건너지 못할 강은 없다는 신념을 가져라. 이 시대는 그 어느 때 보다도 종교적 신념으로 단단히 무장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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