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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신세대 구세대

소망초등학교 교장 유영덕

편집부 | 기사입력 2017/06/09 [11:07]

[기고] 신세대 구세대

소망초등학교 교장 유영덕

편집부 | 입력 : 2017/06/09 [11:07]
▲   소망초등학교 교장 유영덕
2년간 회사생활을 해오던 아들이, 나이 삼십에 공부를 시작하겠다고 한다. 오래 전부터 염불을 하듯 시험 준비하랄 때는, 엄마 아빠 때와는 다른 세상이라며 공무원이 싫다더니 말이다. 하긴 오랜 동안 한 집에 같이 살 때도, 생각이 딱 떨어지게 일치하는 일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의견이 다를 때 나는 자식들에게 철이 없어 그렇다 하고, 애들은 나에게 시대가 달라졌다며 공격적 방어를 해왔다. 그 때마다 죄 없이 뭇매를 맞은 것은 ‘세대 차이’였다. 그러고 보니, ‘아들이 벌써 구세대가 되어가는 건가?’ 더럭 겁이 난다.

칭찬받아 마땅한 젊은이들의 성향 중 으뜸은, 부단히 새로움을 추구하는 기특함이다. 이 과정에서, 기존의 틀을 깨기도 하고 더하기도 하여 다른 것을 만들어 내곤 한다. 새로운 성취를 위해 기꺼이 바치는 열정은, ‘신세대’ 정도로 이름 짓기에는 더 없이 숭고한 그 무엇이 있다. 반면 구세대는 일반적으로 변화보다 안정을 원하는데, 지켜온 가정과 쌓아온 명예 등이 그리로 등을 떠미는 것일 게다. 가진 것을 지키고자하는 순수한 보편을 ‘구세대’의 특징으로 설명하기엔 좀 어줍지 않다. 하지만 신세대에 세월을 보태어 구세대가 되는 것이라면 이들은 본디 하나다.

지금도 친구들은 나에게 꽤 젊게 산다고들 하지만, 집에서 자식들은 그저 나를 흔한 ‘꼰대’로밖에 보지 않는다. 그나마, 내가 보는 아들딸은 어줍지 않지만 신세대의 기질을 가지고 있으니 우리 가정은 건강하고 튼튼하다. 신 구세대의 조화는, 새의 양 날개와도 같고 수레로 치면 두 바퀴다. 한 쪽 날개가 유난히 크면 날 수가 없고, 한 쪽 바퀴가 너무 작아도 수레는 역할을 못한다. 원래 신세대와 구세대는 서로 어깨를 기대는 친근한 단어다. 엄마와 아빠처럼 가까운 사이일 뿐 맞서는 상대니, 서로는 부족함을 채우는 같은 편인 것이다.

신세대구세대로 따로 이름 짓는 것은, 세월을 기준으로 편을 가르는 무리지음이다. 두 단어로 가르기 어려우면 중도세대를 만들고, 더 가르다 보니 신세대 성향의 기성세대도 만들어졌다. 일단 편으로 묶이면 서로를 ‘상대’로 이름 짓고 그들을 탓한다. 약아빠진 사람들은, 이런 현상까지 이용하여 자신의 이익을 챙기기도 한다. 오죽하면 한때는, 우리나라에 지역 갈등보다 세대 갈등이 더 심각하다 했을까? 하지만 신세대는 내가 온 곳이고, 구세대 또한 내가 갈 길이니 미움도 원망도 부질없다.

다시 집안 이야기다. 어떠한 가정이든 구성원이 서로 화목해야 행복한 가정이다. 하지만 말로 쉬운 화목은, 자녀를 하나의 인격체로 동일하게 존중하고 포용할 때만 가능하다. 한 여름 밤 개구리들의 합창은 구성지지만, 인간이 개구리 소리를 내고 있다면 어떤 생각이 드는가? 그를 상대로 보면 해괴한 일이요. 그를 존중하면 희한한 재주를 가진 것이다. 세대를 떠나 언제나 내편이라는, 긍정적 사고가 필요하다. 구세대는 자신이 이겨온 역경을 바탕으로 지킬 것을 만들어주며, 신세대는 물려받은 것들을 더욱 값지게 만들어야 한다.

아름다운 구세대 예쁜 신세대를, 편 갈라 이겨야하는 무서운 단어로 사용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아들 짧게 공부해서 해결하자.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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