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의사 간 극한 대립은 결국 상처만 남겼다. 깊어질 대로 깊어진 갈등의 골을 없앨 정부의 대책 마련이 관건이다. 의대 정원 확대를 둘러싸고 3개월 여 넘게 이어진 의·정 대립에서 법원이 정부의 손을 들어줬다.
서울고등법원 행정 7부(재판장 구회근)는 지난 16일 의대 증원 효력 집행정지 사건 항고심에서 각하 및 기각 결정을 했다. 재판부는 의대 교수와 전공의 등의 신청은 요건이 안 된다고 판단해 각하했고, 의대 재학생의 신청에 대해서는 ‘집행정지를 인용할 경우 공공복리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다’라고 판단해 기각했다.
항고심 재판부는 의대생과 교수, 전공의 등이 내년 의대 정원 증원 효력을 멈춰달라며 정부를 상대로 낸 집행정지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의대생들의 원고 적격성에 대해 학습권 침해 등은 일부 인정했지만 공공복리가 더 중요하다고 판단해 각하됐다.
의대 정원은 20년 가까이 동결되면서 의료인력 수급에 차질이 빚어졌고 그 결과 필수의료, 지역의료가 붕괴될 위기에 처했다. 서울고법의 결정 과정에서 핵심적인 쟁점은 제삼자의 소송 제기 자격을 인정하느냐 여부였으나 1심처럼 2심도 의대 증원 집행정지 신청인들에 대해 이해관계를 인정할 수 없는 제삼자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행정처분이 취소될 경우 법률상으로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이익을 갖지 않는다고 보았다. 또 법원은 의료계의 집행정지 신청이 인용될 경우 국민의 공공복리에 미칠 심각한 악영향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의료계는 즉각 반발했지만 내년도 의대 증원은 정부의 방침에 따라 일단 예정대로 진행될 수 있게 됐다. 내년도 의대 진학을 준비 중인 수험생 등의 혼란을 그나마 막을 수 있게 된 점은 천만다행이 아닐 수 없다.
의사 측 대리인 법무법인 찬종 이병철 변호사는 이날 항고심 재판부의 결정에 대해 "대법원에 재항고하겠다"라며 "대법원이 기본권 보호를 위해 이 사건을 이달 31일 이전(정부의 증원 확정 전)에 심리·확정해 줄 것으로 기대한다"라고 말했다.
2심의 결정이 각별한 의미를 갖는 것은 올해 2월부터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 간 의대 증원 2,000명을 둘러싼 첨예한 갈등이 일단 변곡점을 맞게 됐다는 점이다. 법원 결정으로 내년도 의대 정원은 각 대학의 자율적인 증원 결정에 의해 진행되게 됐다.
또 내후년도 이후부터 2,000명을 증원하려는 정부의 계획도 탄력을 받게 됐다. 앞으로 의료계의 재항고 등이 남아있긴 하지만 큰 틀에서 의대 증원의 가닥은 잡혔다고 볼 수 있다. 그동안 의대 증원을 둘러싼 갈등으로 엄청난 국가적 에너지 낭비는 물론 환자들의 극심한 고통을 헤아린다면 의료계도 이제는 고집을 꺾고 유연한 출구 전략을 마련해야 할 때이다.
당장은 현재의 의료 현장 파행을 정상으로 되돌려 놓는 일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말할 것도 없이 전공의 복귀 등 의료계의 협조가 절대적인 선결 요건이다. 의료계는 현장 복귀 거부 등 더욱 강경한 입장이지만 언제까지 이럴 수는 없다.
국민들은 의사들의 ‘불통 이기주의’에 인내심이 사실상 바닥났다. 정부도 사법적 근거를 인정받았다고 해서 의료계와의 대화 노력을 소홀히 해선 안 된다. 아직 증원 갈등이 완전히 해소된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그동안 지적됐던 의대 증원의 정책적 미비점을 꼼꼼하게 보완해 끝까지 의료계를 설득해야 한다. 의료개혁은 의료계의 동참 없이는 성공할 수 없다는 점에서 정부는 일방적으로 밀어붙이기보다 의료계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충분히 설득하는 자세를 견지해 주기 바란다.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것은 결국 환자들이다. 의료계 내부에서도 정책 추진 순서에 이견이 있을 뿐 우선순위를 재조정해서 보다 나은 의료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아울러 의료계도 대승적 결정을 내려야 할 때다.
의료계는 그간의 반발을 접고 정부가 마련한 의료개혁특별위원회의 참여 등 의료개혁에 동참해야 한다. 재항고나 진료 거부는 의사들의 집단이기주의만 부각시키는 일이 될 것이다. 의대생은 학업에 복귀하고 전공의와 교수들은 환자 곁으로 가야 한다.
아울러 대학들은 그동안 보류해 온 학칙 개정 등 증원에 필요한 절차를 속히 마무리하고 늦어도 다음달 초까지는 내년도 대입전형 시행계획을 확정해 수험생들의 불안감을 해소하기 바란다.
아직 남은 불씨가 적지 않다. 우선, 전공의와 의대생들의 유급이 임박했다. 이달 말까지 복귀하지 않으면 내년 의대 증원 효과가 반감될 만큼 후유증이 커진다. 전공의 이탈이 장기화되면 환자 피해가 커지고 대학병원들은 경영난에 빠질게 뻔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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