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무쌍한 현대사회에서, ‘충청도는 양반 고을이다’라고 말한다면 조금 새삼스럽기도 하지만 굳이 부정할 이유도 없다. 특히 충남지역에는 충신열사들이 상당히 많다는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도내 전역은 병풍처럼 펼쳐진 산야들을 자주 접할 수 있어서 전답이 많은 전라도와 비교되고, 서해에 가까운 아산, 예산, 홍성, 서산 등 지역에도 심상치 않은 산들이 나름의 위세를 뽐내고 있다.
이러한 산세들은 풍수지리설과 연계되어 있고, 명당론은 곧 벼슬의 등장을 품고 있어서 한때에는 정감록이 유행하지 않았던가. 벼슬은 글공부하는 선비들의 등용문이므로 권력 향유의 바로미터가 되었던 것이다.
벼슬은 개인의 출세일 뿐만 아니라 가문의 영광과 함께 하사된 토지를 사용할 수 있는 권한도 주어졌다. 토지는 지역 백성들에게 소작을 주고 백성들은 소작료를 받치면서 어렵게 생계를 유지하였다. 농사짓지 않아도 먹고 살길이 많은 현대인과 비교할 때 이해가 어렵겠지만, 왕조시대에서는 불가피한 상황이다.
봉건사회에서 동, 서양을 불문하고 경험하였던 것이고 이러한 시대적 조류에서 영국은 1215년 마그나카르타를 만들었고 미국은 1776년 영국에서 독립을 선언하고 프랑스는 1789년 시민혁명을 일으키면서 자유와 민주, 자본주의 발전을 거듭한 것이 근대 전후 역사이다. 한편, 조선은 1910년 한일합방으로 500년 역사가 끊어졌고 독립을 외치기는 하였으나 역부족이었으며 세계 2차 대전 종료와 함께 미국의 도움으로 1945년 해방을 맞이하여 현재의 대한민국이 존재함은 두 말이 필요 없다.
이러한 흐름과 함께, 한반도 충남지역에서 충신열사가 많이 배출된 배경은 상당히 유의미하다. 3.1 운동 유관순 열사를 위시하여 이동영 독립투사, 이순신 장군, 박문수 어사, 추사 김정희, 맹사성 등등 굵직한 인물들이 집중적으로 배출되었다.
왜 충남지역에서 걸출한 인물들이 많은가. 우선 자연환경에서부터 그 이유를 찾아본다. 한반도의 지형은 동고서저(東高西底) 형이고 산세는 북고남저(北高南底) 형이다.
따라서 권력의 중심지 한양을 중심으로, 경기도 북부와 강원도 북동쪽은 해발 1,000m 이상의 고산준령들이 많고 농지가 적다. 그러나 남서쪽인 충남지역에는 해발 500m 이하의 비교적 낮은 산들이 마을과 농지들을 둘러싸고 있어서 자연과 인간의 친화적 분위기를 만들어 준다.
벼슬에 꿈을 가진 선비들이나 한양에서 벼슬하다가 잠시 떠난 사대부 출신들이 기거하기에 최적의 환경이 되었을 것이다. 공부에는 조용한 산속이 좋다. 한양 이남은 기온과 식량에서도 유리할 뿐만 아니라 언제라도 벼슬길에 다시 복귀하기에도 편리한 여건이다.
전국 각처에서 과거시험에 응하고자 한양을 찾았고, 벼슬길에 성공하여 권력을 누리다가 재기를 기다리거나 낙향하려던 선비들이, 한양에 가까우면서도 학문연마에 최적지인 충남지역을 선호하게 되면서 이 지역은 선비양반 출신들이 지속적으로 자리를 잡게 되었고 그 후손들이 점점 마을을 형성하면서 충청도를 대변하는 정체성으로 이어져 왔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양반과 상민의 관계가 대두될 수밖에 없고 한 번이라도 벼슬을 갖게 되면 영원히 양반으로 행세한다. 그 가족들도 세습적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논밭에서 생활하지 않았고, 소작인 주민들은 양반들이 원하는 대로 곡물을 바쳐야 하는 폐쇄적 사회이었다.
상민들은 양반들로부터 혜택이 많이 부여되면 될수록 기뻐하게 되는, 주인과 노예의 성격이 되어 버린 것이다. 노예는 주인이 시키는 대로 할 뿐, 자신의 의지대로 살 수가 없는 사회에서 항상 눈치를 살피면서 살아야 했다. 이러한 우리 조상들 삶의 패턴은 지금도 유전자적으로 영향이 미치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21세기 한국 사회는 자본주의, 민주주의의 형식이 갖추어져 있기는 하지만 아직도 일반 대중들은 조선조에서 뿌리 박힌 노예적 근성이 내재되어 있다. 일례로, 지난 4.10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충청도의 중심이고 인구 70만 명에 이르는 천안에서 후보자 3명 전원이 제1야당 소속으로 당선된 사실을 제시하기도 한다.
이유는 야당의 공약사항으로 1인당 25만 원 지급과 1주 4.5일 근무가 주효했다는 주장들이 있기 때문이다. 각자에 따라 의견을 달리한다고 해도, 노예들은 나라가 주는 혜택을 마다할 이유가 없고 공짜라면 양잿물도 마신다는 옛 속담도 존재한다는 측면에서 민주, 자본주의적 미성숙의 비난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한 포퓰리즘 공약을 남발하는 정치인들은 노예근성이 없는가. 노예가 노예의 심정을 잘 알기 때문에 그러한 망국적 포퓰리즘을 남발한다고 볼 수도 있다.
일찍이 요산요수(樂山樂水)라고 가르쳤는데, 덕 있는 자는 산을 즐기며 불필요한 재물을 탐하지 않았고, 지혜로운 자는 물을 즐기면서 상선약수(上善若水)의 순리를 논했다.
화이부동(和而不同) 동이불화(同而不和)라는 가르침으로서, 군자는 나라를 위하여 화합을 추구하나 편을 가르는 짓을 하지 않고, 소인은 전체 화합에는 관심 없고 편을 갈라 끼리끼리 나눠 먹는 짓을 좋아한다라고 질타하였다. 고전은 현대의 거울이므로 성숙된 민주사회로 가는 발전의 교훈이 되어야 한다.
<저작권자 ⓒ 충남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