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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지방보조금지원사업(미디어지원분야) 석오 이동녕 선생은 누구인가?

제1강의 “석오이동녕아카데미” 열다 (4/26 녹화)

김용부 기자 | 기사입력 2025/04/26 [17:04]

충청남도 지방보조금지원사업(미디어지원분야) 석오 이동녕 선생은 누구인가?

제1강의 “석오이동녕아카데미” 열다 (4/26 녹화)

김용부 기자 | 입력 : 2025/04/26 [17:04]

 

충청남도 지방보조금지원사업(미디어지원분야)으로 충남신문(대표 윤광희)에서 주최하고, 석오 이동영 선생 선양회(상임대표 서문동 (남서울대 행정사무처장), 이하 선양회)에서 주관하여, 충남 지역 각계 지도자들을 대상으로 “석오 이동녕 선생 아카데미 제1기 최고지도자과정”이 지난 지난 4월 26일 나라사랑국민운동본부 (본부장 염남훈) 강당에서 열렸다.

 



 

염남훈 선양회 공동대표는 “제1기생을 정원 30명 대상으로 모집하였으나, 50여 명이 지원하는 등 열기에 감사드린다, 앞으로 아카데미를 더 확대해 나가도록 하겠다”라고 말했다.

 

윤광희 충남신문 대표는 개회사에서 “각계 지도자들을 모시고 최고지도자과정을 진행하게 되어 기쁘다며, 아카데미를 주관하는 석오이동녕 선생선양회에서 잘 추진해 줄 것으로 믿는다”라고 말하였다.

 

 

 

이어서 서문동 선양회 상임대표는 석오아카데미의 제1회 “석오 이동녕 선생은 누구인가?” 란 제목의 특강을 진행하였다.

 

석오 이동녕 선생은 충남 천안 목천에서 교육자의 집안에서 태어났으며, 우리 민족 역사상 가장 어렵고 암울했던 일제 강점기에 국권 회복 및 조국광복을 위해 헌신하였다.

 

 

이동영 선생은 교육자로 언론인으로 독립운동가로 세계열강들과 일제의 침탈로 쓰러져 가는 나라의 국권 회복을 바로 세우고자 독립협회, 만민공동회, 상동교회 청년회, 신민회, 제국신문 논설 등으로 국권회복운동, 애국계몽운동을 하고 만주로 망명하여 서전서숙, 대성학교, 오산학교, 설립에 참여하며 교육에 힘썼다.

 

 

그는 신흥 무관학교 초대 교장으로서 독립투사 3,500여 명을 양성하고 1919년 1월 길림성에서 대한독립선언서 선포에 참여하였다.

 

그리고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대한광복군정부를 수립, 운영 경험을 바탕으로 국제 정치의 중심인 상해에서 우리 민족의 체계적인 독립투쟁을 위해 단일 정부 수립의 필요성을 민족지사들에게 호소하며애국지사들을 규합하였다.

 

드디어 1919년 4월 10일 한인 8도 대표 29명이 임시의정원을 개원하며 초대의장으로 선출되었으며, 국호를 “대한민국”을 정하고, 삼권분립에 기초한 의회민주주의 “민주공화제”를 선포함으로 민주주의의 초석을 다졌다.

 

 

임시헌장에는 국민 기본권인 자유권, 참정권, 평등권을 규정하고 국민의 기본 의무인 교육, 납세, 병역 의무를 규정하였으며 1910년 대한제국 멸망 후 9년 만에 대한민국을 건국하였다.

 

이동녕 선생은 막후에서 독립투쟁을 진두지휘하며 임시의정원 초대의장 등 3차례 의장, 임시정부 주석 5차례, 대통령, 국무총리, 국무령 등 국가수반을 5차례를 역임하며 임시정부를 실질적으로 이끌고 경영하며 유지 시켜왔다.

 

그는 우리 민족의 지도자로 역사에 기록되어야 마땅함에도 1940년 9번째 임시정부 기강 청사에서 순국함으로, 1948년 김구 주석의 주선으로 효창원에 영면하고 있다.

 

 

1962년 우리나라 정부는 독립유공자 208명에 대한 건국훈장 명단을 발표하고, 3월 1일 건국공로훈장을 추서였는데, 이때 석오이동녕선생은 2등급에 추서되는 안타까운 일이 발생되었다.

 

이에 뜻있는 사람들이 2019년 천안시 남파오거리에 동상을 제막하였으며 지속적인 1등급 서훈 상향 필요성을 전파하면서 드디어 2022년 12월 천안시에서 ‘석오 이동녕 선생 서훈 상향 범시민추진위원회’(공동위원장 천안시장, 선양회 상임대표)가 구성되어 현재 73,000여 명의 서명을 받았다.

 

 

 

이어, 선양회 역사문화국장 겸 공동대표인 김중영 대표는 보충 강의에서 석오 이동녕 선생은 한일병탄으로국권이 침탈되면서 국내에서 활동이 어려워지자 중국 동삼성 서간도 유하현 삼원보로 망명하여, 한국인의 자치기관인 “경학사” (후, 서로군정서)를 이석영, 이철영, 이회영, 이시영, 이상룡 선생 등과 함께 설립하였다.

 

 

경학사는 교포들의 신분보장과 독립 정신 고취에 앞장섰으며, 곧이어 신흥학교(후,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하여 초대교장으로 취임, 군사교육을 통해 독립 정신을 고취하며, 광복군의 초석이 된 독립투사 양성에 헌신하였다고 설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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