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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몸값은?

충남신문 칼럼니스트, 천안언론인클럽 상임고문/ 임명섭

편집부 | 기사입력 2026/01/21 [15:30]

사람의 몸값은?

충남신문 칼럼니스트, 천안언론인클럽 상임고문/ 임명섭

편집부 | 입력 : 2026/01/21 [15:30]

 

여러분은 혹시 운명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운명이란 인간을 포함한 모든 것을 지배하는 초인간적인 힘, 또는 그것에 의하여 이미 정해져 있는 목숨이나 처지를 의미한다. 자신이 없으면 세상도 없다. 아니, 있긴 하겠지만 자신과 무관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자신에게 있어서는 자신이 가장 소중한 존재이다. ‘자신에게 있어서는세상의 주인이 바로 자신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인생을 살아주는 사람은 남이 아니라 바로 자신이다. 다른 사람이 나의 삶을 살아주지 않는다. 그럼 세상의 주인인 자신은 얼마짜리일까?

 

사고로 자신이 죽는다면 가해자는 유족에게 얼마를 배상해야 할까? 사람의 목숨을 돈으로 환산하면 얼마나 될까? 아니, 소중한 사람의 생명을 돈으로 평가한다는 것 자체가 말도 안 되는 소리다. 굳이 돈으로 따진다 하더라도 값을 매길 수 없는 만큼 소중한게 사람의 생명이 아닐까?

 

또 사람에 따라, 지위에 따라 목숨의 가치가 달라서도 안 될 것이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어떨까? 사람의 목숨값이 사회경제적 여건에 따라 계량화되는 것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우리 법원은 대략 사람의 목숨값을 55000만 원 정도를 최대로 하고 있다. (2023년 기준, 청년·무직자일 경우).

 

거기에다 위자료 최대 1억 원 정도 추가해 지급하므로 대략 65000만 원 정도 수준이 된다. 지금 자신을 돈으로 환산한다면 그렇다는 것이다. 이 금액을 넘어서서 받기는 쉽지 않다. 자신이 교통사고나 공사 현장에서 사고로 사망하는 경우, 또는 고의로 살인을 당한 경우에도 손해 배상 금액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모든 손해배상소송은 피해자 측의 과실을 고려해 과실상계(감액)를 하기 때문이다. 사람마다 경제적 가치를 숫자로 부여할 수는 있더라도, 사람의 신체와 생명에 대한 위협을 두고 이해타산을 앞세우지는 말아야 한다. 사업장마다 안전에 대한 의식 전환이 중요하다.

 

이것이 "기업 자율의 안전 관리 체계 구축"을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다. 그럼 사람의 목숨(또는 신체)값을 정할 수 있을까? 만약 그렇다면 그 값어치는 사람마다 다를까? 한때 온 나라를 뜨겁게 달궜던 이슈가 '산업 재해'의 경우다. 특히 건설 현장에서 사고가 발생하면 살인 행위나 다름이 없다.

 

그럴 때마다 정부가 직접 나서 건설사를 압박하고 심지어 건설 라이센스를 말소시키겠다고 으름장을 놓아 건설사들을 벌벌 떨게 했다. 현장에서 사망자가 발생하면 해당 사업장의 시공사가 어디인지 알려지고, 이후 해당 건설사의 주가가 급락하는 현상도 빈번했다.

 

인명 사고가 건설사의 기업 가치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인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건설 현장의 사고가 사회에 미치는 파급력은 상대적으로 약하다. 건설사들은 정권의 서슬 퍼런 칼날을 우려해 말을 아낀다. 건설 현장을 100% 컨트롤 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인명 사고를 막을 수 없다는 발뺌이다.

 

건설 현장에서 인명 사고는 인명재천이여 사망자가 발생해도 어쩔 수 없는 일로 치부하려는 속내가 다분하다. 그럼 건설 현장의 사고가 좀처럼 부각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 원인들이 있긴 하겠지만 일단 사고를 당한 이들의 상당수가 값싼 임금을 주는 외국인이라는 점이 영향을 미쳤다.

 

냉정히 말해 남의 나라 사람 죽는 것에는 관심이 없다. 최근 들어 인권의 가치가 몰라보게 올라가면서 이 같은 신념은 너무도 당연하게 받아 들여진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국가의 국민소득 수준에 따라 몸값도 천차만별로 달라진다. 최근 이스라엘과 하마스는 지난해 1단계 휴전 합의에 서명하면서 하마스가 보유한 인질 20명과 이스라엘이 보유한 팔레스타인 수감자 약 2000명을 맞바꾸었다.

 

이때 단순 비율만 봐도 이스라엘 포로와 팔레스타인 포로의 값어치가 1:100 이였다. 이스라엘의 1인당 GDP53372달러, 팔레스타인이 3663달러인 점을 감안하면 현실에서는 격차가 너무 크다. 예전보다 완화되긴 했지만 우리도 유독 개인보다는 조직과 단체, 공동체를 중요시하는 경향이 뚜렷하다.

 

저개발 국가에서 코리안 드림을 이루기 위해 한국에 들어온 외국인 노동자들은 우리가 보호해야 할 대상에서 제외 시켜 버리고 있는 건설 현장의 냉엄한 분위기가 씁쓸하다. 산업 현장에서 일하다 죽는 나라, 더는 용납할 수 없다”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다.

 

죽어도 할 수 없다, 뭐 죽어도 어쩔 수 없지, 이런 생각을 한 결과가 아닌가라는 산재 사망 사고 통계를 보면 공감이 간다. 산업 재해 사망자는 기본 안전 수칙만 준수해도 막을 수 있다. 지난 20년의 산업 재해 발생 추이에서 OECD 주요 국가와 비교하면 우리나라는 여전히 높다.

 

건설 현장에서 책임이 뚜렷하지 않기 때문이다. 주로 취약 계층이 죽음으로 몰렸기 때문이다. 사람 목숨값을 기업 가치보다 가볍게 여기는 야만을 문명이라 말하면 안 된다. 정부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지만, 정부가 의지가 있다면 기업과 사회를 이끌 수 있을 것이다.

 

당신은 스스로 얼마짜리라고 생각 하시나요?" 삶과 영혼의 무게를 무엇으로 어떻게 달아볼 것인가? 미래에 대한 희망과 기대를 어떻게 돈으로 환산할 수 있다는 말인가? 사랑하는 가족을 잃었을 때의 아픔을 생각해 보자. 중대재해 처벌법이 도입 된 지 4년에 접어 들었지만 사건은 여전히 미해결 상태인 것으로 드러났다.

 

 

또 중처법 집행유예율은 일반 형사사건의 2.3, 무죄 비율은 3배로 '솜방망이 처벌'에 그친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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