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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월남전 참전 용사

천안역사문화연구실장 김성열

편집부 | 기사입력 2014/08/08 [10:49]

잊혀진 월남전 참전 용사

천안역사문화연구실장 김성열

편집부 | 입력 : 2014/08/08 [10:49]

▲     © 편집부
잊혀진 월남전에 국군 파병안이 1965.8.13에 국회에서 통과되었다. 월남(베트남) 전쟁은 공산침략에 대항하는 미국의 굳건한 공약수행 행위라 보는 견지에서 대부분 자유진영 국가들은 미국을 지원하였다.
 
자유진영 국가들은 월남을 공산주의 침략으로부터 구출하는 것은 바로 동남아 지역의 반공 보루를 굳게 하는 것이며 전 세계 자유진영의 안전을 보장하는 길이 된다고 확신했다.
 
자유진영 국가들은 호주를 비롯하여 20개 국가가 물자 경제적 원조를 제공하였는데 한국의 파병은 그 수에 있어서나 그것이 지닌 의의에 있어서나 주목할 만한 현상이라 할 수 있다.
 
즉 한국은 월남과 마찬가지로 남북이 갈리어 있고 직접 공산침략을 물리쳤던 경험을 가졌으며 그 용맹이 베트콩의 게릴라전을 능히 대적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각별한 의의를 가진 것이다. 미국과 월남이 쌍수 들고 환영한 이유도 바로 이러한데 있었다.
 
한국군의 월남파병은 1964년 초 미국과 월남이 자유진영의 월남지원을 호소한 이래 논의 되었다. 1965년 2월 비둘기부대라는 비전투부대 공병대 병력 2,000명을 파견한 후 전투부대를 파병하게 되었다. 육군 해병대 전투요원 맹호부대 청룡부대 백마부대 모두 약 32만명이 파병되었다.
 
월남전 참전은 한미동맹 결속을 강화하고 한국군의 장비 현대화와 전투경험 축적은 물론 한국이 국제사회에 등장하는 계기가 됐다. 또한 미국으로부터 경제개발 차관도 받아냈으나 그 이면에서는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만 했다.
 
잊혀진 월남전에서 한국군 1만 5,000여명이 전사 또는 부상당했고 아직도 상당수는 고엽제 후유증으로 병마에 시달리고 있다. 월남파병 장병들이 국내로 송금한 해외근무수당과 용역물자조달 등 특수로 벌어들인 13억 달러와 정부가 밝히지 않은 브라운 각서에 의한 전투수당 유입으로 내수산업과 수출을 크게 증대시켰다.
 
특히 국토개발 사업으로 경부고속도로 건설의 밑거름이 되어 우리나라 기간산업 육성에 크게 공헌했다. 현재 경부고속도로에서 발생하는 경제적 시너지 효과는 연간 13조 5,000억원으로 평가된다고 한다.
 
2012년 초 42년 만에 월남전 참전용사들에게 국가유공자로 예우하는 대통령 이름으로 국가유공자 증서와 국가보훈처장이 발행하는 유공자증이 집으로 배달되었다. 그러나 이제껏 갖고 있던 참전용사증이 유공자증으로 바꾸었을 뿐 예우가 달라진 것은 없다.
 
월남전에 참전한 천안의 젊은이들은 약 1,200여명 이며 고엽제로 고생하는 전우들은 620여명으로 파악되고 있다.
 
1965년 월남전 참전 용사들과 고엽제 후유증으로 외롭게 투병하는 옹사들 그리고 전사한 용사들과 가족들의 고귀한 희생정신에 머리 숙여 감사해야 한다. 월남 참전 전사·부상 용사 1만 5,000여 명 중에 전사한 천안 젊은이들의 명단은 파악되지 못했으나 유량동 천안인의 상 각령비에 명각된 1,111명 중에 포함되어 전해 온다. 월남전에서 전사한 자랑스러운 천안의 젊은이들의 이름이 아직 파악되지 못해 아쉬운 마음이다.
 
우리나라가 오늘 만큼 세계 10위권 경제 대국이고 남을 돕는 나라가 된 데는 월남 파병 용사 근로자 파독 광부 간호사 중동근로자에 이르기까지 이국땅에서 목숨을 바치고 피땀 흘린 분들의 덕이 컸다.
 
시대정신에 투철했던 월남전 참전 용사들의 나라사랑 천안사랑 정신을 선양하는 것이 우리시대 정신이다. 
                                                                                    천안역사문화연구실
                                                                                          실장  김 성 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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