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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문학의 산맥을 오르면서

충남신문 칼럼니스트 / 시인 김인희

편집부 | 기사입력 2023/03/29 [13:52]

거대한 문학의 산맥을 오르면서

충남신문 칼럼니스트 / 시인 김인희

편집부 | 입력 : 2023/03/29 [13:52]

 

 

올해 필자의 최대 과업은 산을 정복하는 것이다. 작년 한 해 동안 공부하면서 넘어야 할 산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우왕좌왕했다. 막상 다섯 손가락 안으로 선택의 폭이 좁혀졌을 때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지 혼란이 가중되었다. 양손에 하나씩 쥐고 오른손에 든 것을 취할지 왼손에 잡은 것으로 결정해야 할지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천칭저울의 양 끝에 놓여 한 치 오차 없이 평형을 이루었다.

 

누가 선택해 줄 수 없는 오롯이 필자의 몫이었다. 태산을 오르기로 작정하고 발을 들였으니 정상에 오르는 여러 노선 중에서 한 갈래를 선택해야 할 기로에서 망설임은 위대한 갈등이었다. 아직 가보지 않은 길, 경사의 정도조차 가늠하지 못하고 여정에서 무엇을 만나게 될지 두려운 마음도 동반했다. 날마다 밤이나 낮이나 길을 선택하기 위해 스스로에게 묻고 자료를 찾으면서 하늘에 지혜를 구했다.

 

최종 노선을 선택한 후 박경리 작가의 대하소설 토지(土地)열여섯 권을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토지(土地)1897년부터 1945년까지 약 50년의 긴 시간과 공간을 기록한 거대한 문학 산맥이다. 작가의 나이 43세에 쓰기 시작하여 25년이란 긴 시간에 걸쳐 600명이 넘은 등장인물과 평사리와 진주에서 간도와 일본까지 공간을 넘나들면서 기록한 삼만 장의 원고는 고통의 결과물이요 생명이 창조물이라고 했다.

 

대한민국 문학에 웅대한 문학세계를 구축한 흙과 생명의 작가 박경리 작가는 공간과 시간 속에 존재하는 생명, 그 한()의 세계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담는 그릇이라고 역설했던 토지(土地)속에서 언어의 문화와 역사를 찾아 기록하고 연구하기로 작정했다. 낮에는 직장에서 일하고 퇴근 후 가사와 병행하며 늦은 밤까지 자료를 찾는 일이 더디기만 하다. 작은 활자로 빼곡하게 인쇄된 책 열여섯 권은 필자가 넘어야 할 거대한 산으로 덮쳐온다.

 

이른 봄 휴일 아침에 작정하고 하동 평사리를 목적 삼아 길을 나섰다. 봄꽃을 찾아가는 나들이가 아닌 박경리 작가를 찾아가는 길이었다. 책은 인터넷 서점을 통하여 주문하면 되고 다른 자료는 컴퓨터를 열면 얼마든지 볼 수 있고 구할 수 있다. 그러나 필자에게는 어딘가 채워지지 않는 공간이 있었고 그곳을 무엇으로 채워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휴일 아침 하동으로 가는 자동차 안에서 그 무엇인가에 대한 열망은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는 것보다 간절했다.

 

이번 하동 평사리 여정은 초행이 아니었다. 재작년에 방문했을 때 코로나-19 팬데믹이 창궐로 박경리 문학관은 한시적으로 폐관한다는 안내문이 있었다. 그때 토지 야외 촬영장만 둘러보고 아쉬운 발길을 돌렸었다. 그 길을 되짚어가는 마음은 비장한 투사의 마음과 다르지 않았다. 쥘부채 하나 들고 외줄에 막 발을 올려놓으려는 광대의 심정이 그와 같을까.

 

박경리 문학관에 도착하여 발걸음을 옮기면서 옷깃을 매만지고 심호흡을 했다. 잔디로 조성된 마당에는 잔디를 밟지 않고 걸을 수 있도록 넓은 돌을 이어 붙여 놓았다. 마치 징검다리를 걷는 기분으로 한걸음 또 한걸음 걸었다. 박물관 앞 광장에 박경리 작가의 동상이 마치 관람객을 맞이하듯 서 있다. 동상의 받침 측면에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는 작가가 생전 했던 어록이 새겨져 있었다.

 

박물관 내부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그래, 글 기둥 하나 붙들고 여까지 왔네.’라는 글이 세로로 새겨져 있었다. 그 문장을 읽으면서 필자의 가슴에 쿵 하고 큰 바위가 굴러들어 오는 것을 느꼈다. 박물관에 내부에 전시되어있는 박경리 작가의 걸작 토지(土地)의 역사를 관람하는 내내 숨을 크게 쉴 수 없었다. 작가의 유품을 마주했을 때 필자의 심장이 잠시 멈추었다. 박경리 작가가 작품을 쓸 때 국어사전을 늘 곁에 두었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었다. 막상 그 국어사전과 마주했을 때는 눈을 깜박할 수조차 없었고 몸이 점점 굳어지더니 순간 발작하듯 전율했다. 크고 두꺼운 국어사전을 책장의 끝이 닳고 닳아서 얇아졌고 표지는 찢겨나간 듯 알몸이었다. 그리고 그 옆에 있던 손잡이가 반들반들하게 윤이 나는 돋보기도 작가를 만난 듯 숭고했다.

 

박물관 내부를 관람하고 밖으로 나와 박경리 작가(동상)를 만났다. 필자는 작가의 옷자락을 만지고 작가의 손을 잡고 작가의 눈을 보고 한참을 머물렀다. “난 특별히 문학을 내 인생과 갈라놓지 않는다. 내 인생이 문학이고, 문학이 내 인생이다. 글을 쓰지 않은 내 삶의 터전은 없었다. 목숨이 있는 이상 난 또 글을 쓰지 않을 수 없었고, 보름 만에 퇴원한 그날부터 가슴에 붕대를 감은 채 토지(土地)를 썼던 것이다. 문학의 바탕은 휴머니즘이다. 글 쓰는 데 몰두한 게 내 삶의 전부다.” 작가의 음성을 마음으로 들으면서 필자의 깊은 내면에 문학의 유전자로 새겨지기를 염원했다.

 

작가를 알현하고 돌아서는 데 석양이 필자의 정수리를 밝게 비추었다. 작가의 삶을 녹여 탄생시킨 열여섯 산맥을 더듬으면서 무엇을 찾아야 하는가. 호열자라는 새까만 죽음의 빛깔과 벼의 황금빛이 삶과 죽음의 대비가 하나의 색채로써 확대되고 심화시킨 작가의 필력을 필자의 DNA에 각인시켜야 한다. 자음과 모음, 점 하나도 놓치지 않고 모두 샅샅이 살펴야 한다. 작가가 잡았던 글 기둥 어느 끝이라도 붙들어야 한다는 간절함이 꿈틀거린다. 돌아오는 길은 천군만마를 얻은 듯 든든하고 험산준령을 거뜬히 넘을 수 있을 것 같은 강한 믿음으로 충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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