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기본 성품으로서 지켜야 할 인성과 살아가는 과정에 발생하는 개인적 권리로서 인권은 양면의 동전 같기도 하지만 그리 간단한 문제도 아닐 것이다.
어느 날 엄마가 어린아이와 함께 길을 가는데 엄마가 한눈을 판 사이에 아이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져 울고 있었다, 그 엄마는 “이 나쁜 돌멩이야! 하필이면 왜 우리 아이를 다치게 하냐?” 그리고 아이가 보도록 그 돌멩이를 마구 때리는 시늉을 하자 아이는 울음을 그친다. 즉 내 실수보다는 돌멩이를 탓하는 모습으로 비치는 것이다.
언젠가 시내버스 안에서 엄마와 어린아이가 타고 있었는데 아이가 칭얼대며 소리 내어 운다. 엄마는 아이를 달래어 보지만 막무가내이다. 다른 승객들이 말은 없지만 바라보는 눈빛은 불편하다. 그 상태에서도 엄마는 “나만 자식이 있나요? 아이가 좀 울 수도 있는 것 아닌가요?”라고 말하는 듯하다.
이웃 나라 일본의 엄마들은 다르다고 한다, 넘어진 아이에게 부주의를 먼저 지적하고 버스 안에서 아이가 보채면 곧바로 엄마는 승객들을 향하여 “미안합니다”라고 말하고 다음 정류장에서 무조건 하차한다고 한다.
서양 사회에서는 아이가 혼자 일어서도록 지켜보면서 상처의 상태를 살펴볼 것이고, 버스 안에서 아이들이 칭얼대는 버릇은 아예 발생하지 않을 것 같다. 어릴 때부터 부모와 다른 침대를 사용하며 독립심을 키우며 사는 문화의 차이일 것이다.
얼마 전, 초등학교 교사가 학부모의 민원에 시달리다가 자살한 사건이 보도되었다. 정부 기관의 공무원이 자신의 자식을 가르치는 담임교사에게 “우리 아이는 왕족의 DNA가 있으니 조심하시오”라는 등의 수차례 협박성 민원을 제기하였다고 한다. 그러한 부모 아래에서 보고 듣고 자란 아이는 실제로 담임선생님을 돌봄이 정도로 여기지 않았을까 싶다.
그렇게 부모들의 과보호 하에서 자라난 아이들이 성인이 되어서도 그러한 기본 틀을 스스로 벗어나지 못한다면 하나의 인간으로서 기본 인성에 문제가 된다고 보아야 한다. 부모로서 어린 자식에 대한 애절하고 각별한 관심과 사랑이야 누가 부정할 수 있겠는가. 다만 유달리 가족주의가 강하다는 측면에서는 문제가 될 수도 있다.
내 자식을 향한 편협한 애정이 오히려 장래를 망치는 독이 될 수도 있다는 교훈을 상기할 때, 그 책임은 전통적 가족주의에게 죄를 물을 수밖에 없을 것 같다.
특히 중국 대륙과 한반도에서는 혈족 중심으로 오밀조밀 살아가는 전통문화가 자리 잡아 왔다. 농지의 관리를 위하여 식구들이 먼저 나서야 했고 늘어나는 가족들의 질서유지를 위하여 ‘어른’의 역할도 필요했다. 최고 연장자로서 어른이 되었고 그 아래 구성원들은 무조건 따라야 했다. 내 가족 위주의 가부장(家父長)제도가 뿌리내리게 된 것이다.
동양 봉건제의 핵심은 혈연을 중심으로 효성과 함께 나라에 충성을 유도하여 사회질서를 유지하려는 정치체제이다. 그 사이에서 교육이 큰 역할을 하게 되고 유학이라는 학문이 발전하게 되었으며 스승과 제자라는 위계가 만들어진다.
스승은 부모처럼, 제자는 자식처럼 이라는 또 다른 가족주의적 질서가 만들어지고 이를 하나로 묶으면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한국 사람들의 바탕에는 지금도 유교의 가르침이 녹아 있고 그 핵심은 효(孝)와 충(忠)이었으며 그 결과가 인성(人性)으로 발현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근래 자동차 뒷면에 “아이가 타고 있어요. 조심해 주세요”라는 문구가 붙은 사례는 누구나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이러한 경우는 인성의 문제라기보다는 인권(人權)의 문제로 접근이 더 가깝다고 보여진다.
우선 나부터 피해를 받지 않을 권리가 주장될 수 있다. 나의 차량 뒤에서 달려오는 자동차에게도 미리 경고하는 효과가 있다. 그러나 다른 차량의 입장에서는 무언의 압력과 함께 잠재적 범죄자 취급도 당하는 셈이 된다.
서울 지하철역에서는 휠체어를 탄 지체장애자들이 모여서 시위를 벌인 적도 있었다. 장애자들이 더 편하게 교통시설을 이용할 수 있도록 요구하는 목적이다. 그러나 승객들이 집중되는 출퇴근 시간에 농성을 벌이게 되면 수많은 시민들이 큰 불편을 당하는데 그 책임은 또 누구에게 있는가.
인권은 다른 가족에 대한 배려와 타인이라는 존재에 대한 존중에서 시작된다. 시대적 흐름으로서 지식의 축적, 급속한 경제성장으로 인하여 국가 위상과 개인 가치도 비례 발전하기 때문에 남의 가족과 다른 사람의 권리가 각자의 인권으로 부각되는 세상이 되었다.
현재 사회에서 인권에 대한 관심은 국민들 스스로의 자각이라기보다는 부추기는 특정세력에 의한 포퓰리즘과 약자 코스프레 성격도 무시할 수 없다. 현재 권력에 대한 견제나 저항 수단으로 이용되고 미래 권력을 도모하는 정치이념이 소수 약자를 앞세우기도 하는 것이다.
여하튼 내 가족 우선의 이기주의를 탈피하여 다른 가족에 대한 배려와 존중까지 제대로 갖추어진다면 인권을 침해하거나 피해를 받을 이유도 없어질 것이다. 인권은 현행의 수많은 관계법규 등 보호받는 시스템도 많이 갖춰져 있으므로, 인성이 혈연관계로 형성된 사전적 품성이라면 인권은 사회발전의 사후적 인격이기도 하다.
<저작권자 ⓒ 충남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
|
칼럼·오피니언 많이 본 기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