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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탐사 기획보도…제12탄, 저항시인 만해(萬海) 한용운

충청남도 지역 언론 지원사업…내포 문화의 역사적 인물집중 탐방

정덕진 기자 | 기사입력 2021/08/25 [14:49]

[특집]탐사 기획보도…제12탄, 저항시인 만해(萬海) 한용운

충청남도 지역 언론 지원사업…내포 문화의 역사적 인물집중 탐방

정덕진 기자 | 입력 : 2021/08/25 [14:49]

 

최태호( 중부대학교 한국어학과 교수)

 

충청남도 홍성군은 만해 한용운(1879~1944)의 본향이다. 선생은 1879829일 충남 홍성군 결성면 성곡리에서 한응준(韓應俊)과 온양 방씨(溫陽方氏) 사이에서 차남으로 태어났다. 본관은 청주이며 자()는 정옥(貞玉), 속명은 유천(裕天), 법명(法名)은 용운(龍雲), 법호(法號)는 만해(萬海)이다. 어려서 서당에서 한학을 수학한 뒤, 향리에서 훈장으로 학동을 가르치기도 하였다. 그는 동학농민운동과 의병활동을 목도(目睹)하면서 집에 안주하지 않고 세상으로 나왔다. 그러다가 불교에 뜻을 두고 백담사에 들어가 불교의 기초 지식을 익혔다. 그러면서도 문명세계에 대한 동경은 그로 하여금 세계일주를 거행하게 하였다. 세계일주를 시베리아에서 중단한 선생은 다시 설악산 백담사로 돌아왔다. 속세와 인연을 끊고 연곡(蓮谷)선사를 은사로 출가하여 정식으로 승려가 되었다.

 

 

조선불교 유신론와 만해

1910년 선생은 한국불교가 새로운 문명세계에 적응할 수 있는 개혁방안을 제시한 기념비적 책인조선불교유신론(朝鮮佛敎維新論)을 백담사에서 탈고하였다. 이 책은 1913년에 발간되었는데 그때부터 선생은 불교의 혁신운동을 일으킨 주역이라는 정체성을 갖게 되었다. <조선불교유신론>은 만해의 사상을 집대성한 책이지만 당시에는 많은 비판을 당해야 했다. 출가인으로서 제사와 출산에 관한 내용이 당대 승려들의 귀에 거슬렸기 때문이다. 나라를 이어가기 위해서는 자식을 낳아야 한다는 것이 그이 지론이었다.

1914년에는 고려대장경의 핵심적인 내용을 축약한 불교대전을 간행하였으며, 이후 정선강의 채근담을 간행하였다. 이렇게 함으로써 선생은 불교의 대중화에 앞장섰고 민중들에게 민족의식을 고양하고자 전력을 기울였다. 그래서 계몽지인 유심(惟心)을 발간하였다.

 

 

독립선언서와 만해

 

1919년 선생은 기독교 불교 천도교 등 종교계를 중심으로 추진된 31운동 계획에 주도하였다. 그는 불교계 인사들과의 접촉을 위해 서울 임제종 포교당에서 같이 활동하였던 백용성(해인사 출신) 선사를 민족대표로 서명하게 하였다. 그리고 경남 거창까지 내려가 유림의 거두인 곽종석을 만나 유림측도 운동에 동참을 유도하였다.

 

만해와 독립운동

19272월 좌우합작 민족협동전선으로 신간회(新幹會)를 창설하여 발기인으로 참여하였다. 아울러 신간회가 창립 후 경성지회장으로 피선되어 민족운동의 최전방에서 활동하였다. 19305월에는 김법린(金法麟), 최범술(崔凡述), 김상호(金尙昊) 20여 명의 청년 불교도들이 비밀리에 조직한 항일운동단체인 만당(卍黨)의 당수로 추대되었다. 1938년 말 일경에게 발각되어 서울, 사천, 진주, 양산 등지에서 6차례의 검거로 말미암아 와해되고 말았다. 그 외에도 만해의 독립에 관한 의지는 매우 적극적이었으며, 조선총독부가 보기 싫어서 집을 총독부가 보이지 않도록 북향으로 지었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저항시인 만해

 

한국문학사에서 선생은 근대적 시인이요, 31운동 세대가 낳은 최대의 민족시인이다. 선생은 88편의 시를 모아 1926님의 침묵이라는 첫 시집을 발간하였고, 시조와 한시를 포함하여 모두 300여 편에 달하는 다양한 작품을 남겼다. 만해의 한시집 잡저(雜著)(1992. 은하출판사에서 필자가 처음으로 번역하여 출간함)에는 164수의 한시가 들어 있다. 한편 님의 침묵(沈默)(1926513일 간행, 98편의 시가 들어 있음)을 통하여 다능력인으로서의 존재감을 확실히 보여주었다. 특히 한시를 통해 인본주의 정신과 사향심(思鄕心), 일제강점기에 대한 저항정신 등을 표출하였다.

 

 

선생은 1944629일 조국광복과 민족독립을 눈앞에 두고 입적하였다. 장례는 전통 불교의식에 따라 화장하였으며, 망우리 공동묘지에 안장되었다.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리어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국가보훈처 : 독립운동가

김종균 : 매천만해지훈의 시인의식, 박영사

최태호 : 만해지훈의 한시, 은하출판사

최태호 : 한시와 현대시, 은하출판사

 

[본 기획 기사는 충청남도 지역언론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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