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에는 탄핵이 관리의 죄를 조사해 임금에게 알린다는 뜻으로 쓰였다. 사헌부·사간원·홍문관의 3사(三司)가 나서 알리면 임금이 단죄하는 식이었다. 하지만 근대 사회로 접어들면서 대통령 등의 막강한 권력을 제한하는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탄핵을 처음 당한 것은 상하이 임시정부 당시 이승만 대통령이다. 임시헌법에 따라 1925년 탄핵 됐다. 이유는 3가지였다. 의정원 승낙 없이 국경을 벗어날 수 없다는 헌법 규정을 어기고 5년 6개월 재임 중 6개월만 상하이에 체류했고, 임시정부 정체성을 부정했으며 구미위원회로부터 들어온 독립자금을 제대로 보고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현행 헌법에서 탄핵 사유는 ‘직무집행에 있어서 헌법이나 법률을 위반한 경우’에 해당된다. 특히 탄핵 심판과 달리 탄핵소추는 법리적인 절차가 필요 없는 정치적 행위다. 따라서 형식적 요건만 충족하면 언제든 발의해·가결할 수 있다.
그러나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탄핵 제도는 엄격하게 운영됐다. 모두 21건의 탄핵소추안이 발의됐지만 박근혜 전 대통령 건만 탄핵 심판에서 인용됐다. 이번에는 탄핵소추를 거대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에서 발의해 정국을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
국회청문회(탄핵소추)는 국회에서 국정에 관하여 증인, 참고인, 감정인을 채택해 이들을 출석시켜 필요한 증언을 듣는 제도로 우리나라에서는 1988년 처음 실시됐다. 국회 청문회는 인사, 정책청문회 등이 있는데 인사청문회는 고위공직자의 자질과 전문성 등을 검증하는 것이며 정책청문회는 국가 정책의 타당성과 예측 그리고 효과 등을 검증하는 제도다.
그래서 국회 청문회는 여야의원들이 청문 대상자들의 자질과 역량을 객관적으로 검증받는 자리다. 국회는 헌법상 대통령도 탄핵시킬 권한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탄핵의 본래 목적은 권력자의 위법한 행동을 제어하는 것이다.
때문에 형식과 절차가 엄격하게 정해져 있어 형사적 소추가 아닌 정파적 이익을 전제한 정치 행위는 혼란스러움만 가중시킬 수 있다. 특히 정치인들이 이해관계에 따라 악용되면 본래의 목적이 쉽게 실종될 수 있다.
또 대통령은 국회의 법률안 통과에 대한 거부권을 가지고 있다. 3권분립의 기본 요소인 상호 견제가 가능한 구조다. 만약 거부권이 없다면 국회가 통과시키는 모든 법은 법대로 정부가 따를 수밖에 없다. 국회가 마음대로 법을 만들면 국회 독재 국가가 된다.
대통령이 거부권을 발동할 수 있으나 국회에서 3분의 2 이상 의원이 찬성할 경우에는 대통령의 거부권도 무력화될 수 있다. 하지만 22대 국회에서 여당이 경우 108석인 만큼 8명만 야당으로 이탈하지 않으면 헌법 개정이나 대통령 탄핵은 불가능하다.
최근 더불어민주당이 국민 동의 청원을 시작, 30일 동안 국민 5만 명의 동의를 얻었기에 소관 국회 상임위에 회부되어 탄핵소추에 따른 절차에 들어갔다. 하지만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여당인 국민의 힘 의원이 불참한 가운데 ‘대통령 탄핵소추안 발의’를 요구하는 국민 청문회를 채택했다.
탄핵 이슈를 본격적으로 띄우기 위한 명분 쌓기에 들어갔다. 법사위는 일방적으로 청문회 관련 서류제출 요구와 증인·참고인 출석요구 건도 의결했다. 19일은 채상병 순직 사건 외압 의혹을, 26일에는 김건희 여사 관련 청문회 일정도 잡았다.
증인으로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의 장모 최은순 씨, 이종섭 전 국방장관, 임성근 전 해병 1사단장 등 39명을 채택했다. 국민 동의 청원은 숫자의 많고 적음에 의미를 두기보다 총선 이후에도 변하지 않는 정부 여당에 대한 경고라고 봐야 한다.
탄핵 대상자가 ‘탄핵할 정도로 헌법과 법률의 중대한 위반이 아니면 국민 청원에 답한 정도일뿐이지 탄핵소추 요건은 되지 않는다. 국민의 힘은 국민 동의 청원에 따라 청문회 준비 절차에 돌입한 데 대해 "세기의 코미디"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정치적 의도로 탄핵정국으로 혼란을 부추긴다면 역풍을 피하기 힘들 것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도 임기 동안에 146만 명의 탄핵 청원이 있었으나 그때도 국회 청문회를 갖지 않았다. 어느 대통령이 집권하든 탄핵 청원이 올라오면 어렵지 않게 100만 명 이상의 동의를 이끌어 낼 수 있을 것이다.
그때마다 탄핵을 한다고 나서면 나라 꼴이 어떻게 되겠나? 민주당이 현 정부 출범 후 발의한 탄핵안은 11건에 달한다. 탄핵소추 전 사퇴한 방통위원장 2명까지 합치면 모두 13건이다. 탄핵을 장난감처럼 휘두른다면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국정을 흔들고 보자는 사태를 좋아할 국민은 없을 것이다. 헌정사상 초유의 청원발(發) 청문회를 열어서라도 대통령 탄핵 군불을 지펴야 하는 다급한 속사정이 읽히고 있다. 민주당은 탄핵 대상자가 탄핵이 되든 안 되든 간에 그들을 국회 증언대에 세워 ‘망신주기’를 위한 술수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국회 법사위가 헌정사상 처음으로 국민 동의 청원을 이유로 규정을 어기면서 청문회를 실시하기로 의결한 것은 깊이 생각해 볼 일이다. 지금 정치권은 정책과 타협은 없고 정쟁과 독주만 보인다. 다수 더불어민주당은 방탄 탄핵 정치에 몰두하고 있는 반면, 소수 국민의힘은 ‘속수무책’과 ‘단결 투쟁'으로 맞서고 있어 국민들의 불안만 가중 시키고 있다. <저작권자 ⓒ 충남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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