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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기념관, 1930년대 한중 항일 연대투쟁과 대전자령전투 국제학술대회 개최

한국독립전쟁사 3대 승전 중 하나인 대전자령전투 소개

윤광희 기자 | 기사입력 2013/11/20 [17:56]

독립기념관, 1930년대 한중 항일 연대투쟁과 대전자령전투 국제학술대회 개최

한국독립전쟁사 3대 승전 중 하나인 대전자령전투 소개

윤광희 기자 | 입력 : 2013/11/20 [17:56]
▲  대전 자령전투 유적지 (길림성 왕창현)   © 충남신문
독립기념관(관장 김능진)은 봉오동전투․청산리전투과 더불어 한국독립운동 ‘3대 승전’ 중 하나인 대전자령전투 80주년을 맞이하여 국가보훈처의 후원을 받아, 2013년 11월 21일 「1930년대 한중 항일 연대투쟁과 대전자령전투」국제학술회의를 백범김구기념관(서울 용산구 소재)에서 개최한다.

1931년 만주사변이후 일제의 본격적인 대륙침략과정에서 만주에서 활동하던 한국의 한국독립군과 중국의 길림구국군(일명 길림자위대) 연합부대는 1933년 6월 30일 일제 간도파견군 1,600여명과 혈투를 벌여 승리한 대전자령 전투는 항일독립전쟁사에서 전리품을 가장 많이 획득한 전투로 기록되어 있다.

이번 학술대회에서는 중국학자 2명, 국내 4명 등 총 6명의 발표자가 ‘한중 항일투쟁과 대전자령전투’라는 주제를 가지고 발표한다.

이번 발표는 그동안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았던 대전자령전투를 국민들에게 소개하는 좋은 기회이며, 이와 함께 일본의 우경화에 따른 역사왜곡․잘못된 침략사에 대한 미반성에 경종을 울리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대전자령전투

▲ 한국 독립군 사령관  지청천 장군  
다뎬쯔링[大甸子嶺]전투라고도 한다. 쓰다오허쯔[四道河子] ·둥징청[東京城] 전투에서 승리한 지청천(池靑天)이 지휘하는 한국독립군과 중국군은 둥징청을 확보하기 위하여 닝안[寧安]을 점령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한 ·중 연합군은 전투에서는 이겼지만 인원과 장비 때문에 1933년 6월 28일 라오쑹링[老松嶺]으로 이동하였다. 이때 다뎬쯔[大甸子]에 주둔하던 일본군 이즈카[飯塚] 부대는 이동하는 한 ·중 연합군을 전멸할 계획을 세웠으나, 7월 1일 일본군의 동정(動靜)에 대한 정보를 얻은 한 ·중 연합군은 일본군의 공격에 대비하여 한국독립군 2,500명, 중국군 2,000명을 대전자령에 잠복시켰다가 대접전을 벌였다.  

4시간의 격전 끝에 이즈카 부대를 전멸시키고, 전리품(戰利品)으로 군복 3,000벌, 박격포 5문, 군용물자 20마차분, 담요 3천 장, 평사포(平射砲) 3문, 소총 1,500자루 등을 얻은 이 전투는 독립군의 항일전에서 특기할 만한 대승리였다. 그러나 전리품의 분배문제로 한 ·중 간에 대립이 생겨 그 후의 한 ·중 연합에 큰 지장을 주었다. 같은해 9월 1일에 한국독립군은 둥닝현[東寧縣]의 적군을 공격했는데, 원병을 보내주기로 약속한 중국 구국군(救國軍)이 약속을 지키지 않아 독립군은 많은 부상자를 내었다. 게다가 한때 중국군은 독립군의 총사령(總司令) 이하 수십 명의 고급간부를 구금했다가 풀어준 일도 있었다.  

‘대전자령전투’가 있었던 장소는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왕청현에 위치하고 있으며, 현재는 ‘태평령’이라고 불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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