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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아랫목의 권위와 순종

소망초등학교 교장 유영덕

편집부 | 기사입력 2017/07/21 [13:16]

[기고] 아랫목의 권위와 순종

소망초등학교 교장 유영덕

편집부 | 입력 : 2017/07/21 [13:16]
▲    소망초등학교 교장 유영덕
요즈음은 찾아보기 어렵지만, 군불이나 연탄 때는 방에는 소위 아랫목이라는 것이 있다. 대개의 아랫목은 장판을 새카맣게 태운 정겨운 모습을 하고 있다. 지난날의 아랫목은 온기를 오래 보전하기 위해 이불을 깔아놓기도 했고, 그 이불 속에 밥그릇을 묻어 보온밥통을 대신하기도 했었다. 온 가족이 한 방에 모이는 시간이면, 할아버지부터 아랫목에 차지하여 집안 서열의 기준이 되기도 했었다. 어쩌다 아랫목을 차지하고 잠든 손주가, 다리를 데었다는 이야기도 나이든 기성세대에겐 흔한 기억이다.

때로는 해산한 며느리가 불편한 아랫목의 주인이 되었던 이야기는 벌써 영화 속이야기로만 느껴진다. 감기 든 손주가 식은땀을 흘리며, 할머니의 사랑으로 이마를 식히던 모습도 그 때의 그림이다. 이런 아랫목이 문명이라는 이름으로 우리 곁에서 사라졌다. 온기를 필요로 한다면, 그깟 아랫목이야 아무러면 어떤가? 요즈음의 집들은 버튼 하나로 방 안은 물론 거실까지 원하는 온도를 얻을 수 있다. 집안의 모든 공간이 아랫목이고, 웬만하면 자신의 방을 따로 가진 세상이 된 것이다.

아랫목이 없어져서 세상이 편해졌다 하니, 몇 조각의 추억인들 대수겠는가? 하지만, 아랫목과 함께 가족 간의 위계까지 사라지는 것 같아 못내 아쉽다. 가장의 권위는 약해졌고, 부부의 벽도 모호해 졌다. 가장의 권위가 사라진 자리는 자녀 우선 의식이 대신 차지했다. 대부분 가정의 하루 일정은, 자녀의 등하교와 학원 수강에 맞추어 짜여 지고 있다. 이러니 ‘부모에게 순종’이라는 말은 실생활에서 찾아보기 어렵게 됐다. 게다가 ‘손주 돌봄 10계명’이라는 말까지 생겨나고, 할아버지의 육아일기도 서점가에 인기다. 손주 하나에 노인 넷이라는 자조 섞인 말까지 덤덤하기만 하다.

교육의 가장 큰 숙제는, 알파고의 진화나 4차 산업혁명에 있는 것이 아니다. 식자들은 약화되고 있는 인성교육의 복원이 가장 시급한 문제라고 입을 모은다. 어느 때부터인지 우리는 기계와의 소통을 늘리고 인간과의 소통을 줄여왔으며, 세대가 아래로 갈수록 이 현상이 더욱 두드러진다. 사람과 대화하는 시간보다 컴퓨터나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는 시간이 늘어가니, 기계와의 소통이 익숙한 반면 사람들과의 소통이 오히려 어색하다. 인성마저 기계의 부속처럼 생각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다.

가정 내, 윗사람의 권위가 약해지기 시작하면서 ‘순종’이라는 단어는 사라진 느낌이다. 어려서 마냥 귀한 자녀, 사춘기가 되면 통제가 어려운 자녀, 인성교육의 기능이 약해진 가정의 일반적 모습이다. 어찌하다보면 가정교육에 손을 놓고, 교육기관의 프로그램에 인성교육을 의존하게 된다. 부모 공경과 순종을 배워야 할 시기를, 과잉보호 속에서 놓쳐버린 것이다. 자녀를 소중하게 대할수록, 자녀는 공경과 순종의 예절을 배우지 못하는 아이러니가 생긴 것이다.

아무 이유도 없이 다른 사람을 해하는가하면, 세상을 같이 뜰 사람을 찾는 인터넷사이트도 생겼다. 그들 모두는 귀한 가정의 소중한 자녀로 극진하게 길러진 인격체다. 바른 인성을 가진 자녀를 원하거든, 스스로 판단할 인격체가 되기까지 부모의 뜻을 순종하는 자녀로 두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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